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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물아일체, K팝은 사반세기 동안 어떤 성장을 거쳐 왔나

by 정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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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우리는 인류 탄생 이래 가장 빠른 기술적·문화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어느덧 우리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의 일상을 떠올리기 어려워졌고, 한때 모두가 향유하던 플랫폼이 순식간에 뒷방으로 밀려나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코로나19의 창궐은 사회와 문화의 어법을 뒤흔들었으며, 최근 몇 년 급격히 성장한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창작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수 세기, 수십 년을 주기로 변화하던 사회는 이제 수 년, 수 개월마다 급변하여 우리에게 그 소용돌이에 적응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원심분리기처럼 우리를 뒤흔드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또 어떻게 버텨야 할 것인가.

물론 우리의 대중음악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음악을 만드는 방식, 유통하는 방식, 소비하는 방식은 지난 수십 년간 거듭된 변화를 겪었고, 새로운 기술과 문화는 그때마다 대중음악을 둘러싼 환경 자체를 새롭게 구성했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약 25년, 세기의 1/4이 지난 지금이 현 세기의 궤적을 돌아보기 적절한 시점이라 판단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이처럼 과거의 전철을 기록하는 일은, 앞으로의 변화를 가늠하기 위한 하나의 이정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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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글에 개인이 투영되는 일은 불가피하고, 그간 리뷰에서 조금씩 K팝에 대한 시선을 드러내왔다. 예컨대 에스파 <LEMONADE> 리뷰에서 K팝에서는 기획이 인물보다 커다란 경우가 많다거나, <V8>에 대해 다루면서 세부 장르 혹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던 이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K팝이 수행한다고 서술하는 식으로 말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점으로 보자면 35년을 향해 가는 이 문화의 시작은 분명 해외 것을 수용해 오는 데 그쳤는데, 이제는 역수출의 모양새를 띠는 데 이르렀다. 아래에서는 200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여러 그룹의 활동 중 극히 일부를 발췌해 읽어 보고자 한다. 그간 많은 곳에서 정리되어 다뤄진 내용 중 일부는 과감히 생략했다.

god부터 리센느 – 매체는 여전히 K팝의 날개다
“예를 들어 우리(빅뱅)를 봤어. 신인 때. 대성이가 예능을 못해, 그러면 우리는 못 커. 누가 봐도 대성이가 예능을 잘 하게 생겼는데. 누가 봐도 영배(태양)가 춤을 잘 추게 생겼는데, 영배가 춤을 못 춰봐. 사람들이 일차원적으로 생각했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충족은 시켜 줘야지.”
지드래곤이 방송 <WINNER TV>에 출연해 데뷔를 앞둔 위너에게 건넨 조언이다. 그 말처럼 일차원적인 이미지와 캐릭터의 각인은 특히 K팝의 흥망성쇠에서 중요한 열쇠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듯, 음악은 늘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매력 어필까지 이어진 후에야 빛을 본다.

1999년 데뷔 후 2000년 TV 프로그램 <god의 육아일기>를 시작으로 ‘애수’, ‘거짓말’, ‘촛불 하나’, ‘길’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국민 아이돌이 된 god와 2024년 데뷔해 최근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의 흥행에 힘입어 ‘LOVE ATTACK’ 역주행을 이룬 리센느는 같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케이스다. 멋에 중점을 둔 아이돌 시장에서 털털하고 소탈한 인간미를 내세운 약진은 TV와 유튜브를 막론하고 존재했다. 강조해야 할 점은 매체를 업고 화제의 중심에 들어도, 궤도에 오르기 전부터 좋은 음악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슈퍼주니어가 슬픈 예를 쥐고 있다. 2015년, 10주년을 기념하여 출연한 <라디오스타>에서 이들은 “예전에는 듣고 욕했는데 요새는 듣지도 않고… / 믿고 거르는 슈퍼주니어 노래라는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라고 했다. 뛰어난 예능 감각으로 꾸준히 얼굴은 비추지만 다소간 난해한 음악 활동을 거듭해 신뢰도를 잃는 현상이 일어난 것. 그 결과 ‘U’나 ‘Sorry, Sorry’ 같은 히트 외에도 ‘Devil’, ‘Magic’, ‘Black Suit’ 등 좋은 퀄리티의 곡을 발매했으나 감상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미비했고, 여전히 음악 그룹보다 예능돌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게 됐다. 통산 200회 투어를 진행하는 탄탄함을 가졌더래도 말이다. 매체가 동력이 되더라도 본체는 언제까지나 음악이다.

문화와 물아일체, K팝은 사반세기 동안 어떤 성장을 거쳐 왔나 image3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아! 옛날이여’ 지상파 음악 순위 프로그램 시청률 10년 넘게 추락

2010년대에 접어들고,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보급이 시작되면서 인터넷이 매체를 장악했다. 2000년대 초반 5~10%이던 음악 방송 시청률은 TV의 장악력이 줄어듦에 따라 1~3% 아래까지 서서히 떨어졌다. 음반을 발표하고 으레 3~4주, 길게는 두 달 얼굴을 비추던 방송 무대에 평균 1~2주, 그마저도 없는 경우도 늘어났다. 출연하더라도 TV 공개에 의의를 두기보다 클립으로 유튜브에 퍼지는 방향을 노리는 일이 잦다. 그렇다면 현재의 아이돌은 주 무대를 어디로 삼는가? 바로 SNS다.

K팝을 좋아하는 이라면 X(구 트위터), 위버스 정도의 어플리케이션은 깔려 있게 마련. 이런 풍토를 이끈 주역은 방탄소년단이다. 팀 자체적으로 트위터와 유튜브 콘텐츠 제작, 라이브 방송 등 팬들과의 소통을 지속했고, 그들을 그들로 보일 수 있게 했다. 멤버 개개인을 비추는 카메라와 맞물려 기폭제가 된 음반이 <화양연화> 시리즈였는데, 데뷔 초에 비해 유순해진 음악과 더불어 방황하는 청춘 서사를 빚어냈다. K팝에서 콘셉트나 세계관을 멤버들에게 부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몰입을 돕는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뮤직비디오에서 드러나는 방황은 투신, 사고 유발 정도의 극단적인 경우지만 실제 방탄소년단도 그 정도의 방황을 겪지는 않았을 테다. 다만 그런 극적인 코드를 이용해 몰입을 유도하고, 음악에선 숙소 이사, 삶을 대하는 태도, 출신 도시 등 멤버들이 직접 써내린 자전적인 경험담을 표현하면서 소통을 통해 알아온 방탄소년단의 실제 이야기를 듣는 듯한 동화를 팬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내가 ‘아는’ 소년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앓는’ 일을 통해 끈끈함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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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판타지 소설로 만든 세계관
방탄소년단의 경우는 세계관을 역이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그 안에서도 사람이었던 반면 당시 세계관의 틀에서 아이돌은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무언가가 돼 있기 때문. 비현실적인 외모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연기하는, 몇 년간 지속된 기류의 시초는 2012년 데뷔한 엑소다. 생명의 나무에서 탄생한 태어난 초능력자들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늑대와 미녀’ 같은 곡에선 안무에 나무의 형상을 녹였고, 이들이 발표한 대다수의 뮤직비디오에선 초자연적인 능력을 다루는 일은 허다하다. 단순히 영상 매체에서의 표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콘서트 연출에도 깃들며 공감각의 영역에 팬들을 초빙했다. 스토리라인 자체를 세계관에 맞춤은 물론, 야광봉이나 무대 장치를 멤버들이 조종하고 있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관객을 현상에 동참한 파트너로 만든 것. 세계관은 확실히 몰입을 위한 도구다. 이런 결집과 좋은 퀄리티의 곡이 만나 ‘으르렁’, ‘중독’, ‘LOVE ME RIGHT’ 등으로 엑소는 인기를 누리며 몇 년간의 전성기를 맞았다.

세계관과 콘셉트는 다르다. 후자가 때마다 변할 수 있는 모티프라면 전자는 거시적인 대형 프로젝트에 가깝다. 그래서 단발적인 움직임보다 훨씬 선명한 기획력이 있어야 수완을 챙길 수 있다. 초능력자라는 게 거짓임을 알고도 속아준다 쳐도, 속아줄 만한 언변과 시각적 쾌감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판타지는 잘 사용하면 일상생활에서 차마 닿을 수 없는 감정을 끌어올리는 훌륭한 간접 경험이다.

2010년대 엑소 등의 팀이 전개한 세계관은 음악 활동 안에 머물렀지만, 에스파가 대표하는 후대의 세계관은 플랜을 음악 바깥으로도 꺼냈다. 흡사 <디지몬 어드벤처> 같은 이야기, 네 명의 에스파와 닮은 또 넷의 ae-에스파가 디지털 세계를 넘나들며 블랙 맘바라는 악과 펼치는 전쟁은 데뷔곡 ‘Black Mamba’부터 정규작 ‘Armageddon’까지 가사와 비디오에 거듭 녹여냄은 물론, SMCU(SM Culture Universe)라는 별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비활동기에도 세계관 전개를 지속했다. 이들의 나침반은 티징과 활동 종료 후까지 고려한 방향으로 인도한다. 다시 말하면, 무대와 음악 비주얼라이징 외의 영역으로까지 침투한다. 좋아하는 그룹이 나에게 내놓을 환상을 언제든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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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었다는 환상 – 프로듀스 시리즈의 등장
여러 회사가 앞다투어 기획력을 음반마다 집약할 때 엠넷에서 시작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반도를 장악했다. 바로 <프로듀스 101>이다. 각자의 세계가 완공되기 이전에 관중을 몰두하게 하는 장치로 오디션 프로그램은 존재해 왔다. 빅뱅, 위너, 아이콘, 트레저 등 대다수의 YG 보이 그룹이 그랬고, JYP의 트와이스 역시 <식스틴>을 통해 멤버를 선별했다. 내가 뽑은 멤버가 데뷔를 이루는 쾌거의 순간을 같이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팬과 아티스트의 유대감에 더 없이 좋은 재료다. 유대의 감각이 무엇보다 주요 장치로 내통하는 K팝에서 이 기류는 하나의 히트 공식에 가깝다. <슈퍼스타 K>, <쇼미더머니> 시리즈 등으로 다양한 뮤지션이 고정 팬층을 확보한 사례를 보면, 비단 K팝만의 전략도 아니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임영웅도 여전히 방영 이후 쌓은 인기로 스타디움 공연을 성사시키고 있듯이.

101명의 연습생이 경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투표로 11명을 뽑아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프로듀스 101> 시리즈는 긍정과 부정 모두를 포함해 그야말로 K팝의 판도를 바꿨다. 첫 시즌이 종료된 2016년 탄생한 걸그룹 아이오아이는 국민 걸그룹이라 일컬을 만한 인기를 누렸으며, 두 번째 시즌의 보이 그룹 워너원 역시 엑소, 방탄소년단과 함께 “엑방원”이라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의 팬덤을 거느렸다. 대중성을 노리는 걸그룹과 팬덤을 사로잡는 보이 그룹의 특징을 극대화한 두 팀은 1~2년 남짓의 짧은 활동기를 거치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꼭 데뷔조에 속하지 않더라도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연습생들이 많았는데, 걸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를 비롯해 여러 그룹의 프로듀서로 전향한 이해인, i-dle의 전소연 그리고 황민현, JR, 백호 등 시즌 2에서 활약한 멤버를 다수 보유한 뉴이스트, 주학년이 소속된 더보이즈 등이 해당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례다.

시즌 1, 2는 데뷔 그룹들이 암표 티켓값의 폭등을 유발했을 정도로 인기였음에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의 성과는 미진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완성도와 영향력을 입증한 시즌은 <프로듀스 48>이다. 이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걸그룹 아이즈원은 2년 6개월의 활동 끝에 한일 양국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는데, 출신 멤버들이 현재 K팝을 선도함으로써 더 큰 후대 영향력을 빚고 있다. 장원영과 안유진의 아이브, 김채원과 사쿠라의 르세라핌은 컴백마다 화제를 몰고 최예나, 권은비 등 솔로로 활동하는 멤버들 또한 순항 중이니 말이다. 그뿐 아니라 프로그램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프로듀스 48>은 일본 AKB48 계열과의 합작 프로젝트였는데, 덕분에 일본의 수익 모델도 빠르게 K팝에 수혈됐다.

대표적인 예시가 프라이빗 메일. 멤버 1인을 골라 매달 정기 결제하면 해당 멤버가 전송하는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이제 버블, 위버스 DM 등의 이름으로 절대다수의 K팝 그룹들에 자연스레 녹아 들었다. 이렇게 수익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것이야 아이돌이 발굴 단계부터 수익성을 서두에 두니 어쩔 수 없다 쳐도, 이쯤부터는 좋아 보이는 선례가 발견되면 너도 나도 그것을 뒤따르는 다수의 예가 발생하며 매니악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비슷비슷한 상품이 매대에 가득 채워지며 새로움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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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시선, 빠르게 닮아가는 시야 – 획일화의 슬픔
아이즈원이 활동중이던 시기,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쳤다. 오프라인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온라인 프로모션이 훨씬 강화된 때다. 2020년 1월, 지코가 강한 묘수를 둔다. 틱톡, 릴스 등 숏폼의 유행 물살을 타고 ‘아무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챌린지라는 키워드를 내세운 것. 화사와 지코가 함께 해당 곡의 안무를 추는 것을 시작으로, 쉽게 따라하기 좋은 안무를 짧은 영상에 담았다. 마치 원더걸스가 2007년 ‘Tell Me’를 발표하고 전국민적으로 안무를 따라 추던 때처럼 말이다. ‘아무노래’는 유행을 연료 삼아 치솟는 그래프를 만들었다. 2020년 연간 차트 1위를 기록하고, 2009년 소녀시대 ‘Gee’ 이후 깨지지 않던 주간 차트 정상 8회, 아이콘 ‘사랑을 했다’와 싸이 ‘강남스타일’이 보유하던 스트리밍 차트 기록마저 넘기며 신드롬에 가까운 곡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챌린지는 K팝에서 하나의 관례가 됐다. 스케줄을 하는 겸해서 영상을 찍는 걸 넘어 아예 챌린지를 찍는 게 스케줄이 될 정도니까.

또 하나의 신드롬은 2022년에 탄생했다. SM에 오래 콘셉트와 비주얼을 담당하다가 하이브에 이적한 민희진이 만든 걸그룹 뉴진스가 그것이다. <뽕>을 발표하며 프로듀서로 입지를 다진 250과 그룹 XXX 및 다양한 프로듀싱으로 이름을 알린 바 있는 FRNK 등을 작곡진으로 두고 K팝의 핵심인 음악과 비주얼라이징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거듭 갱신했다. ‘Hype Boy’, ‘Attention’ 등 데뷔부터 차트 꼭대기에 진입하며 워너원 ‘에너제틱’, 블랙핑크 ‘휘파람’ 이후 몇 년만에 처음으로 데뷔 곡으로 1위를 달성한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발표한 연말 싱글 ‘Ditto’도 국내는 물론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우수 작품상을 수상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도쿄돔 공연까지 이어졌다.

뉴진스는 또 하나의 관례를 남겼는데, 음반의 굿즈화다. CDP를 담을 수 있는 사이즈의 가방 버전이 있는 데뷔 EP, 일본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디자인한 스트링 백이 포함된 일본 데뷔 싱글 등을 발매한 것. 그로 인해 소장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사려고 음반을 구매하는 일이 잦아졌다. 챌린지와 같이 다른 그룹들도 빠르게 콘셉트에 맞는 굿즈 버전 음반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귀여운 캐릭터 키링 앨범이 품절 대란을 일으킨 바 있는 NCT 위시, CD 플레이어를 음반으로 만든 에스파, 이어폰 버전을 만든 엔믹스 등 형식은 다채로워도 결국엔 다 뉴진스를 벤치마킹했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음반의 굿즈화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수순이기도 하다. 다수가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소비하는 마당에 K팝에서 음반은 (물론 모두가 그런 목적으로 구매하진 않지만) 팬사인회 응모권, 포토카드 뽑기 용도로 전락한지 오래니까. 실생활에 사용이 가능한 물체를 만드는 일은 오히려 소비자를 위한 길 같다. 하지만 K팝의 열렬한 소비자기에 느끼는 씁쓸한 점은 획일화되는 발매와 프로모션이다. K팝은 음악 발매 전후를 둘러싼 프로모션 자체가 즐길 거리인데, 그 즐거움이 다 비슷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티징 과정에 하이라이트 메들리, 콘셉트 포토를 몇 장씩 공개하는 과정이 필수 요소가 됐고, 레코딩 비하인드, 네컷 사진 프레임 등 부가 콘텐츠도 템플릿이 됐다. 벤치마킹이 허다해지다 보니 저들이 하는 걸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시선이 당연시해졌다. 이 그룹이 저 그룹 같아진 현상은 그저 시선의 노화에서 생기는 착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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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은 더 이상 단순히 대중음악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현상은 K팝이 매니악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이른바 “그사세”,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말처럼 따로 노는 군집체가 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K팝, 한국의 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국내 대중음악으로 가지는 매력이 줄고 있다는 게. 한국 대중음악 내에서 K팝이 전성기를 이끈 시기는 2007년에서 2012년 정도로 볼 수 있다. 빅뱅, 동방신기,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등 지금도 회자되는 그룹들과 더불어 브라운아이드걸스, 티아라, 샤이니, 2PM 등 모두가 대중이 환호할 법한 음악을 했던 시기였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해외 시장이 뺄 수 없는 정도를 넘어 더 큰 고려 대상이 됐다.

2011년 걸그룹 라니아의 데뷔곡 ‘Dr. Feel Good’, 소녀시대 3집 <The Boys>에 마이클 잭슨 앨범 <Dangerous>를 프로듀싱한 것으로 유명한 테디 라일리가 참여하는 등 다채로운 해외 작곡진이 K팝에 흡수됐다. 국내 프로듀서도 물론 있지만, 다수의 해외 인물들이 송캠프를 통해 만든 곡들이 수급된 크레딧이 어느덧 훨씬 익숙해졌다. 퀄리티는 분명히 상승했지만 많은 곡들이 마음에 남기보다 그저 흘러간 점도 사실이다. 숨겨져 있는 음악을 발굴하고자 하는 레이블들의 각고의 노력은 해외 풀의 흡수를 가속화했다.

이후 몇 년까진 그래도 국내외 활동의 구분이 뚜렷했으나, 이젠 그렇지도 않다. 방탄소년단이 2020년 영어 곡 ‘Dynamite’와 2021년 ‘Butter’, ‘Permission To Dance’로 그래미 어워즈의 문을 두드리게 된 이후 별다른 진출 없이도 해외 각국의 음악 방송에 출연하고, 월드 투어를 진행하는 그룹이 늘었다. 가사에 한국어의 비중은 한없이 줄어들고, 영어를 못 하는 사람은 노래방에서 최신곡을 부르기도 어렵게 됐다. 국위선양의 주역들이 늘어난 일은 기쁜 일이지만, 그 사이 한국 대중 음악은 <쇼미더머니> 열풍에 따라 힙합이 됐다가 2020년대에는 밴드 음악이 됐다.

지난 수십 년간 K팝은 다수의 것이었다가, 파편화됐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SNS의 발전으로 인해 모두가 핵개인화된 취향을 갖게 됐고 더이상 대중성이라는 것이 지표로 작용하기 어렵게 됐으니. 이 수많은 비주류가 쌓아 올린 주류 음악이 어떻게 발전할지 지켜보는 일은 복잡미묘한 감정을 만든다. 어떨 땐 안타깝고, 어떨 땐 한없이 기쁘다. 하지만 어떤 모양으로 변해도 K라는 타이틀은 고유한 성질을 띤다. 팽창의 연속이던 진화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뿐, 아직 쇠퇴를 논하기엔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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