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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음악: 눈으로 듣고 귀로 보기

by 권도엽 | 

비주얼 음악: 눈으로 듣고 귀로 보기 main image데릭 저먼 <블루> (1993)

수소문을 요하는 음악이 있다. 스트리밍 어플에서 서비스하는 음원의 개수와 종류는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OTT 서비스를 동시에 여럿 사용하는 사람만큼 음원 서비스를 여럿 사용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요금이나 독점 공개 등 복합적 이유가 있겠으나 결정적 차이는 단순하게 음악이 영화보다 많다는 데에 있다. 또한 음악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아 이곳저곳에 쉼 없이 분포한다. SNS의 ‘바이럴’ 마케팅과 가장 밀접하게 교류하는 대중음악은 말 그대로 가장 ‘바이러스’에 가까운 예술이다.

비대해진 음악의 총량 사이에서 청취 행위는 호전적으로 되었다. 음악을 긍정하는 것을 넘어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것으로 변한 팬 문화는 폭발적 스트리밍으로 차트를 좌지우지할 화력을 갖추었다. 특히 KPOP에 이르러 경연에서의 승리를 바라고, 청취하는 때가 아닌 순위에 오를 때 더 큰 함성을 지르는 모습은 음악에 일종의 스포츠적 특성을 가미했다. 심지어 우연의 장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경기와 달리 음원 성적은 팬덤의 힘과 직결되고 있다.

그러니 KPOP 업계의 과제는 더 크고 강한 팬덤을 일구는 것이다. 이미 MTV의 출현과 함께 대두된 비주얼과 콘셉트의 중요성이 KPOP의 주요 전략이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시각적인 것은 청각적인 것보다 뚜렷한 인상을 선사하고 소비자를 사로잡기에 용이한 요소였다. 아이돌 음악을 비롯하여 유력한 인디 음악가의 곡에서도 비디오의 도입은 활발하다. 그 덕에 어느덧 인디 음악에서조차 스타 시스템이 열렬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아이돌 멤버의 이미지를 그들의 음악보다도 자주 언급한다. 음악을 소비하는 입장의 난점은 사운드를 판단하는 데에 이런 시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리의 인상은 늘 심상이지만 이미지는 직관적이다. 아이돌의 콘셉트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뒤져야 할 것은 트랙리스트가 아닌 딸려온 사진들이다. 응시하는 순간 무의식에 각인되는 이미지의 정보적 우월함은 그들의 음악이 내세우거나 대변하는 정체성을 단번에 설득해낸다. 그러니 보는 음악과 듣는 음악 사이에 매체로서의 위계가 발생한다. (실제로 1974년 프랜시스 B. 콜라비타가 실행한 실험에서 “시각 우세성 효과”는 입증되었다. 시각적 자극과 청각적 자극을 동시에 받은 참가자는 대개 시각적 자극에 우선 반응했다.) 심지어 대다수의 음악이 기호학적 해석을 거부하는 순진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화된다. 예를 들어 KPOP 음악이 많은 경우에 개념적 진보보다 청각적 중독성을 추구해 왔다는 것이 그렇다.

파스칼 키냐르는 <음악혐오>에서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에 덧붙여 현대 도시에 입각하면 귀뿐만 아닌 눈의 눈꺼풀조차 제 기능을 상실한 마당이다. 거리를 걷는 동안 필연적으로 목격할 수많은 이미지에 사로잡히지 않을 방안은 희박하다. 자본을 동원한 음악이 홍보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환경에서 ‘음악을 감상할 때는 사운드에만 몰두하겠다’라는 무의식을 얕보는 생각도 자연히 주류 음악에 편향되게 작용한다. (혹은 비주얼을 활용한 음악에 대한 무조건적 반발심에 의해 주류 음악에만 유난히 혹독해진다.) 이미지가 창궐하는 시대는 음악을 더 이상 순수한 청각 매체가 아니게 만들었다.

하지만 반드시 어떤 예술이 단일한 감각에 의해 추구되어야 할까? 물론 음악을 절대적으로 음에 의한 것으로 파악할 의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외려 클래식에 반해 말초적 감각과 끊임없이 교류해온 대중음악이 시각과 어울리는 것은 필연일지 모른다. 실제로 동향을 파악한 아티스트는 반발보다 활용에 앞장서는 추세다. 비욘세는 5집 음반 <BEYONCÉ>에서 ‘비주얼 앨범'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며 모든 수록곡에 비디오를 결부시켰다. 하지만 음악의 두 집 살림에 쓸쓸함을 표하는 일도 분명히 이어진다. 그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무엇일까? 소리에 대한 애정? 시스템의 생산력에 대한 질투? 시대의 종언에 대한 노스탤지어? 그도 아니면 경계 짓기를 좋아하던 인간의 습성?

다만 확실한 것은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어도 음악을 시각으로부터 구원하지는 못했다. 이제 선택은 시각과 청각을 두고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현상을 변절이라 부를지 변화라 부를지 진화라 부를지에 대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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