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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KAEBI 연작: 1~4

by 권도엽|

cover image of DOKKAEBI <1>, <2: Labyrinth>, <3: Dusk>, <4: Dawn>
DOKKAEBI <1>, <2: Labyrinth>, <3: Dusk>, <4: Dawn>Foundation Records

2025년 9월부터 2026년 1월까지 간결한 넘버링을 제목으로 한 4장의 앨범이 연달아 발매된다. 언뜻 보아도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는 이 작품의 주인은 “도깨비(DOKKAEBI)”라는 한국적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작풍의 핵으로도 기용한다. 음악은 제목이나 앨범 커버가 주는 편견을 성실히 소화한다. 스산하고 괴기하며 국악적 요소가 드문드문 배어 나오는 비타협적 전자음악이 도깨비의 재현을 꿈꾸듯 한다. 구성원인 데쟈(Deja)와 유래(Yoorae)의 개인 작업물은 도깨비의 것과 아주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데쟈는 모듈러 신시사이저의 무작위성을 토대로 하는 아티스트다. 가벼운 검색으로 그가 사운드 엔지니어로도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면 유래의 몇몇 작업은 좀 더 급진적이다. 무의식적으로 돌려대는 TV 채널을 연상시키는 <YR-TV>는 셔플 재생을 권장한다는 점에서 WOZNIAK의 <Shuffle This Album!>과 닮았고, 과거의 레코딩 파일을 샘플로 활용하는 <Te>는 시간과 아카이브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으로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의 <Tranquilizer>가 수행한 주제의식을 떠오르게 한다. 드물게 전자음을 질료보다 탐구 대상으로 삼는 예리한 방법론이다. 도깨비로서의 작업은 퍼포먼스에 주안을 두었다. 버려진 건물, 자연, 스튜디오 등 다양한 장소에서 펼쳐진 즉흥연주를 음원과 영상으로 녹취했다. 작품의 표면에 대해서는 아티스트가 직접 밴드캠프에 적은 앨범 소개로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악기와 목소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날것 그대로의 도발적인 표현에 집중”하고, “관객을 최면 상태로 이끌며 미로를 헤쳐나가고 빠져나오게 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 모두를 정화”하거나, “촘촘한 질감과 파편적인 리듬”을 갖추었으며, “선언이라기보다는 기도에 가깝”다. 트랙마다 미묘하게 다른 구성이지만, 전반적으로 앰비언트적인 사운드는 심령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명상에 이르게 하며, 도깨비의 장난처럼 치닫는 부분에 돌발성이 내포되어 있다.

음반을 지배하는 공명의 소리는 공간을 개념적으로 이용하는 작업에 적합해 보인다. 대부분의 음향에 에코 효과가 입혀져 있는데, 이는 공간에 의해 실질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해도 공간에 대한 반향을 개념적으로 체득한다. 그들이 “의식” 또는 “암호화된 음성”이라 부르는 언어가 없는 듯한 보컬은 옴(만트라)처럼 들린다. 공명과 영적인 것은 전통적인 상관이 있다. 다만 만트라에서 그것은 신성에 관한 것이지만 도깨비의 경우는 아리송하다. 도깨비는 잡귀다. 일반적으로 도깨비는 천방지축의 요괴 취급을 받는다. 때로 순박하고 때로 위험하다는 이 괴물은 조선 후기에 신으로 숭배받기도 했다지만 이제 와서는 한 동화책에서 엄마의 빨랫감이 되는가 하면 한 시리즈물에서 미모의 남배우에 의해 미화된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뭐, 이것이 포스트모던 이후의 숭배 방식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공간은 사물의 집합이다. 오래된 사물이 도깨비로 변한다는 전승을 연상하면 음반에 흥미로운 지점이 생긴다. 먼저 도깨비라는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대적 존재는 아니다. 요즘의 어린아이는 도깨비가 잡으러 온다는 말보다 차라리 로블록스 플레이 시간을 통제하겠다는 협박을 더 자주 듣고 자랄 것이다. 외부에서 완성된 산업혁명을 주입받아야 했던 한국의 근현대사는 전통성과 현대성을 가르는 주요 키워드를 ‘개화’로 만들었다. 동양적인 것은 과거의 것이고 서양적인 것이 미래적이다. 효율성의 척도에서 단연 압도적이던 서양 문물은 그렇게 눈치챌 새도 없이 문화 제국주의의 아성을 떨치는 데에 성공한다. 도깨비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두려워하는 일은 옛말이 되었다.

음반 속 도깨비의 소리에 언어가 없음은 당연지사다. 그것이 요괴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가 요괴를 존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이웃집 토토로>에서 어른들은 토토로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현대는 도깨비와 소통하는 방법을 잊었다. 대중음악의 향방도 이에 자유롭지 않은데, DOKKAEBI의 연작에 나타나는 국악이 그 점을 드러낸다. 민중의 것으로 내려오던 판소리나 민요, 풍요의 신이라던 도깨비에게 올리던 제사는 가곡에서 록을 지나 팝에 이르렀다. 최근 이희문, 송소희, 까데호, 추다혜차지스 등 타협점 같은 음악이 간신히 국악을 호명하는 동안에도 주체는 대부분 팝으로 간주되었고, 원래가 대중음악이던 국악의 일종은 현대적 대중에게 전달되기 위해 전통성을 깎아나가야 했다.

무정부주의적이라고 해도 좋을 노이즈 기반의 전자음악에서야 도깨비는 그나마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비록 말로 전달되지는 않는 ‘1장, 7절’의 도깨비는 거의 비명을 내지른다. 비애는 무용(無用)한 것이 되어야 할 예술에서조차 도깨비가 ‘어딘가’에 갇혀 있던 탓에 발현한다. 그 어딘가란 데쟈와 유래가 도깨비를 목격했다고 진술하는 재개발단지, 폐건물, 미술관, 천, 폐병원, 아트스페이스3, 시골 등이다. 효율성에 의해 존재를 부정 당하고 개편되는 장소거나, 그대로 외면당하는 곳이거나, 효율성의 저편을 지향해야 하지만 효율성의 이데올로기에 가장 뼈저리게 잠식당한 예술의 공간이다. 음반은 이 효율성을 배반하기 위해 노이즈를 활용한다. 현대의 작동 원리에서 전통과 요괴의 존재가 잡음임을 인용하는 것이다.

그들이 <2: Labyrinth>를 소개하며 “관습을 전복”하려는 열망을 언급하는 것에 전통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전통은 더 이상 관습이 아니다. 헨리 무어의 조각이 원시 미술에서 영향을 받았더래도 새로워 보이듯 금세기의 과거란 미래보다도 낯선 나라다. 뉴 잭 스윙이나 팝 발라드에 의해 복고주의를 주창하는 요즈음의 인기작에 고(古)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입당한 옛것 아니면 훔쳐 온 옛것, 이미 개화와 효율의 옛것이다. <2: Labyrinth>의 3번째 트랙에 도깨비가 인간사를 들여다보며 낭독하는 뉴스는 그런 좌절감에 못을 박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 관련 후속 소식이 주를 이루는 내레이션은 반복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중첩되고 엇갈리며 다시 소음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효율성의 논리로 돌아가는 사회와 예술 시장에서 현실보다 시의적 형식은 없으며, 현실보다 드라마틱 하거나 풍자적인 예술도 없다. 효율성이 좌지우지하는 포퓰리즘의 정치술은 반지성주의와 사대주의, 현대적 우상숭배, 바이러스적 (Viral) 선동과 모에화된 폭력을 자랑한다. 뉴스는 완전한 블랙코미디다. 도깨비 장난처럼 무언가 선포되었다가 사라지고 갈등의 상징들이 비로소 수면 위로 솟아오르면 마술이 없는 방망이질만이 서로를 향해 연신 휘둘러진다.

작가의 말마따나 혼을 부르고, 희로애락을 느끼고, 인간사를 들여다보고, 혼을 보내주었다는 <2: Labyrinth> 이후의 <3: Dusk>, <4: Dawn>은 단출한 소개와 음반 규격처럼 도깨비의 음성보다 자연과 주술의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다크 앰비언트와 드론 음악적 접근이 강화된 두 작품은 낮과 밤의 경계에서 도깨비가 활약하는 밤의 시간이 끝나감과 동시에 연작의 마무리를 암시하고 시골과 해돋이 전경 같은 자연친화적 장소에서 귀문의 열림과 닫힘을 추상적으로 묘사한다. 기도라고 추정되는 보컬의 톤도 사뭇 다르다. 아마 그 기도가 이제까지 들어왔던 도깨비나 도깨비를 소환하는 이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음성으로 독립적으로 구현된다. 하지만 여전히 음성에는 언어가 없다. 앨범 내내 명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뉴스를 낭독하는 도깨비의 목소리 정도지만 그마저도 흐지부지된다. 주술의 음성은 신성에 근접하기 위해 인간의 것과 다를 수 있고 도깨비의 음성은 상술했듯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고 보자. 여기서 기도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이유를 구태여 추정하면, 첫째로 인간이 신성에 염원하는 것들은 대개가 무사태평이기에 굳이 명시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 둘째로 그러한 인간의 세속적 염원에 도깨비가 심술을 부려 말을 빼앗았을지 모른다. 셋째로 도깨비도 신성도 없고 그렇기에 염원도 가능하지 않은 현대의 기가 막힌 효율적 세계관에 인간은 실언하고 말았을 수 있다. 도깨비는 처음부터 없었다. 이 음악이 가장 영적으로 보였을 특정 공간에서의 즉흥연주도 음반이라는 휘발되지 않는 기록 매체에 갇힌 박제된 형상만을 남겼다. 도깨비는 설화나 음반 같은 매개에서나 전통의 아둔함을 상징하는 자국으로 건조하게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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