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is ain't no party, this ain't no disco.
This ain't no fooling around.
No time for dancing or lovey-dovey
I ain't got time for that now- Talking Heads, ‘Life During Wartime’ 중
1979년, 토킹 헤즈의 프론트맨 데이비드 번은 당시 경찰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과 마찰을 빚은 공생해방군 패티 허스트, 독일 바더 마인호프 등의 행적을 목격한 후 “Life During Wartime”이라는 곡을 써내렸다. 이 곡에서 그는 편집증에 시달리는 좌파 게릴라의 삶을 비추며 그들뿐 아니라 우리 현대인 모두의 삶이 전쟁과도 같다고 비유한다. 그곳이 브라운스톤이든 게토든, 휴스턴이든 디트로이트든, 창가에 서면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는 이곳은 전쟁의 한복판이요, 우리는 그 이름 없는 전쟁에 휘말린 포로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There is only dance music in times of war
(…)
But we have danced for too long- ‘100 Horses’ 중
토킹 헤즈가 <Fear of Music>을 발표하고 약 46년이 흐른 지금, 토킹 헤즈의 땅 뉴욕에서 나고 자란 젊은 사내 카메론 윈터와 그의 밴드 기스는 아버지뻘 밴드 토킹 헤즈의 언사를 완전히 뒤틀어 버리고는 제법 비슷한 종류의 울림을 선사한다. 그 46년의 기간 동안 미국은, 또 우리는 어떻게 이 거대 사회의 전쟁 같은 억압에 저항해 왔는가. “전쟁 중에는 춤곡밖에 없다”는 사실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춤을 췄다”는 사실을 병치하며, 기스는 그 수십년 동안 우리가 그 어떤 저항도 성공해내지 못했다는 현실을 처절하게 시사한다. 그 전쟁은 아직 진행 중에 있고, 사회는 여전히 우리가 춤을 추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 전쟁은 더욱 참혹해졌을지도 모르겠다. 1979년의 데이비드 번이 무기를 가득 실은 차량에 대한 이야기를 귀로 전해 들었다면, 2025년의 카메론 윈터는 (스스로 좌파를 자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차에 폭탄이 실려 있다는 사실을 각혈하듯 거칠게 토해낸다.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전염병처럼 퍼진 정치적 양극화와 극심한 혼란, 사회 갈등으로 인해 수십년 전 좌파 운동가에게나 유효했던 사회적 위협이 고스란히 일반 청년의 눈앞까지 닥쳐온 것이다. “THERE’S A BOMB IN MY CAR!” 카메론 윈터의 이 비명은 이러한 관점에서 본인이 직면한 위험을 알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위험의 이른 진압을 염원하고 촉구하는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치 화재 발생 상황에서의 “불이야!”처럼.
이렇게 사회가 청년을 낭떠러지 끝까지 몰아내는 작금의 상황에서, 밴드가 택한 저항의 방식은 바로 무너지기, 그것도 아주 처절하고 철저하게 무너지는 일이다. 편안하고 괜찮은 삶이 우리를 죽이고 있으니, 차라리 스스로 파멸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프론트맨 카메론 윈터의 2024년 말 솔로작 <Heavy Metal>에서도 목격되었던 종류의 것으로, 어찌 보면 <Getting Killed>의 그는 마치 당시의 취약함과 정서적 전달력을 보다 넓은 차원의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Heavy Metal>이 그랬듯, 화자는 스스로의 취약함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그 헐벗은 몸으로 사회의 청년이 직면한 위험을 목도, 이내 직접 그 고통의 수문을 열어 물밀듯 밀려오는 고통의 파도에 스스로 침몰해 버린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 하였던가. 그 어떤 시련도 버텨내야 할 청년이 스스로를 기꺼이 타자화하고, 이내 파멸을 자처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처절하고 끔찍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보다 더 끔찍한 사실은, 사회가 지금 이 청년의 처절한 파멸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감추려 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파멸은, 파멸에서 머무르지 않기 위해, 더 돋보이는 모양으로 전시될 필요가 있다. 혼자 아무리 오열해 봤자 이 사회가 더 슬픈 놈의 눈물로 내 슬픔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사회의 끔찍한 통제 속에 눈에 조금이라도 뜨이기 위해서 그는 더 처절하게, 더 기괴하게 울부짖어야 한다. 괜찮은 삶, 괜찮은 죽음은 집단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Getting Killed>가 그토록 기묘한 사운드를 택한 이유다. 케니 비츠(본작에서는 케네스 블룸)라는 이질적 이름과 함께, 밴드는 특유의 독창적 사운드로 스스로의 무너짐을 더욱 돋보이게 치장하고 부각한다. (힙합 기반 프로듀서의 참여로 독창성을 증대했다는 점에서 Parquet Courts의 <Wide Awake!> 같은 작품과 비교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그 기묘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운드는 과거의 유령에도, 현재의 유행에도 천착하지 않으며 오히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흔적을 페이드 아웃처럼 아우른다. 이들의 호소가 특정 세대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시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작 <3D Country>에서 여유롭게 늘어지던 컨트리 사운드는 롤링 스톤스 등이 연상되는 고전 블루스 록 특유의 카리스마로 승화하고, 예상 궤적을 번번이 이탈하는 실험적 변곡에서는 캡틴 비프하트-프랭크 자파가 행했던 삐걱거림이 엿보인다. 나아가 이는 결국 파케이 코츠, 비아그라 보이스 등이 보여주었던 (또한 기스 스스로가 데뷔작 <Projecter>에서 행했던) 미국 포스트 펑크의 날카로움으로 귀결하고, 그 창의적인 작곡과 처절한 호소로 미국 인디 록의 애수와 바다 건너 윈드밀 씬의 진취적 에너지마저 기꺼이 귀합한다.
물론 기스의 이러한 호소는 시대를 향해 어떤 선언을 하는 것도,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Getting Killed>는 어떠한 선언도 할 수 없고 마땅한 해결책조차 보이지 않는 시대를 향한 절규이고, 그 암울한 사회적 공허와 소외, 불안을 스스로에게 집약하여 아주 기괴하고 우아하게 전시하는 작품에 가깝다. 물론 가장 흥미로운, 또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의 새 시대가 이미 이 파멸을 새로운 시대정신의 일부로 채택했다는 것으로, 우리는 이 시대적 파멸이 더 큰 재앙으로 번지지 않기를 간곡히 바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