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언제까지 ‘밈 음악’을 무시할 수 있을까? 숏폼 영상 기반의 챌린지 문화와 다발적인 밈의 형성, 등은 어느덧 음악 홍보의 도구를 넘어 음악 자체의 예술적 정체성, 캐릭터를 형성/전달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격상되어 버렸다. 좋든 싫든 현재 수많은 음악과 대중예술이 짧은 영상과 단편적 밈의 형태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커다란 물결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그 시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 성공 사례 또한 제법 다양해졌다. 틱톡이 비교적 제 힘을 쓰지 못하는 국내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 각종 홍보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K팝 제작진이 숏폼 바이럴을 염두에 둔 작곡을 행하고 있음은 이미 자명한 사실이며, 힙합 씬에서도 최근 Molly Yam이라는 사례가 존재한다. 이러한 밈 문화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여겨지던, 예컨대 ‘My Love Mine All Mine’의 Mitski나 ‘Inside Out’/’Me and the Birds’의 duster 같은 인디의 대표주자들 또한 어느덧 틱톡 바이럴 물결에 올라타지 않았던가. 우리는 과연 이 흐름을 거부해야 할까, 아니면 이용해야 할까.
21세기 출생 젊은이들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겠으나, 미국의 래퍼 Soulja Boy는 과연 이러한 방식의 캐릭터라이징을 사실상 처음 대중음악계에 진입시킨 뮤지션으로 여겨진다. 당시 만 16세였던 그는 LimeWire, MySpace 등 인터넷 매개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곡을 이곳 저곳으로 확산시켰고, 그 과정에서 사이트 구조의 허점을 파고들거나 다양한 편법을 이용하기도 하며 바이럴 흐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과정이었는지에는 물론 의문이 따르나, 결국 그의 데뷔곡 ‘Crank That (Soulja Boy)’는 소위 ‘슈퍼맨 댄스’ 열풍을 일으키며 당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초창기 YouTube 문화를 상징하는 히트 싱글로 여겨진다. 당시의 음악적 평가는 물론 좋지 않았지만, 현대 밈 음악의 효시 중 하나로 여겨지는 곡인 만큼 그 문화적 중요성은 과연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그의 선지적 업적을 언급할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까?
앞서 인상 깊은 트랩 음악을 연이어 선보인 바 있는 래퍼 100KGOLD(허니케이골드)는 그의 최신작 <iGoofyManeTellem>을 통해 Soulja Boy에 대한 오마주를 적극적으로 표방한다. 타이틀부터 그의 메이저 2번째 작품인 <iSouljaBoyTellem>의 패러디이며, 앨범의 상당 부분을 Soulja Boy식 스냅/퓨처리스틱 스웨그 스타일에 할애하고 있다. 3박의 핑거 스냅과 링톤 멜로디를 대동한 ‘Look At Me’ 등은 거의 재연의 수준.
물론 그렇다 하여 본작이 단순 Soulja Boy 스타일에 천착하는 작품이라 보기는 곤란하다. 오히려 본작은 Soulja Boy 스타일을 포함한 당대 남부 힙합(Crunk가 개발되고 히트한 2000년대 전후)의 특징적 요소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며, 이를 노골적으로 패스티시하는 컨셉 앨범에 가깝다. Goofy Mane이라는 패러디 페르소나를 대동한 100KGOLD는 Gucci Mane, Lil Wayne,Young Jeezy 등 당대 남부 힙합의 상징적 플로우나 수사법을 자연스럽게 차용하고, DJ Drama 대신 DJ KB의 명의를 가져 온 권기백은 당대의 사운드 작법을 적극 활용하여 작품을 채운다. 앨범 자체가 어찌 보면 하나의 헌정인 셈.
DJ Drama가 Gangsta Grillz 시리즈를 히트시키던 그 시절, 믹스테이프 시대로 통용되는 당대 미학의 재현 측면에서만 보아도 본작은 탁월하다. 100KGOLD의 어딘가 얼빠진 플로우와 익살스런 가사는 실제 Datpiff에서 튀어나왔다 한들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DJ KB, 권기백은 영민한 샘플 배치의 비정형성으로 당대 믹스테이프 미학을 절묘히 구현한다. 재기발랄한 크렁크부터 저렴하게 웅장한 Jeezy/T.I.식 팝 랩(‘V’s Up’)까지, 당대 미학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는 다양성 또한 괄목할 만한 부분. Gucci Mane식 캐럴을 정확히 재현한 ‘Snow Mane’은 듣자마자 긍정적 의미의 헛웃음부터 튀어나온다.
이러한 시대적/사운드적 지향 측면에서 본작은 앞서 TisaKorean이 <Let Me Update My Status>에서 선보인 방향과 같은 맥락에 놓을 수 있어 보인다. 실제로 두 작품 모두 Soulja Boy와 Snap 스타일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당대 남부 힙합에 대한 기술적/예술적 오마주를 담아내고 있으며, 이를 적절히 변형하여 아티스트 고유의 스타일로 승화시키고 있다. 와중에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은 각 아티스트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염두에 두는지에 있다. <Let Me Update My Status>의 Tisakorean이 작품의 사운드적 즉흥성을 강화하는 용도로 당대 남부의 미학을 차용한다면, <iGoofyManeTellem>의 100KGOLD와 권기백은 마치 그 즉흥적 성질, 당대 남부 힙합의 정신을 본인 세대의 세대의식과 결부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본작 <iGoofyManeTellem>을 ‘번역’의 작품이라 칭하고 싶다. 국내 힙합의 차세대를 대표하는 이들이 20년 전 남부 힙합 스타일을 본인들의 어법으로 채택하고, 이를 신세대의 언어로 치환해냄으로써 끝내 본인 세대의 정신과 동일시시키는 셈이다. 권기백이 이끄는 크루 영 임마 그릴즈(Young Money와 Gangsta Grillz에 대한 패러디로 보인다.)의 음악적 철학 또한 이와 큰 연관성을 가질 것이다. 실제로 권기백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남부 힙합에 대한 애정을 깊게 드러낸 바 있으며, 그의 음악적 색채 또한 남부의 그것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을 남부 힙합에 대한 헌사를 넘어 어떤 집단적 경의로 해석한다 하여도 그닥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확실히 최근 신세대가 추구하는 정신은 2000년대 남부의 그것과 닮은 점이 있다. Effie를 필두로 한 하이퍼팝 진영, <YAHO>의 EK 등이 보여준 파티/쾌락친화적 경향성은 과거 애틀랜타/마이애미의 경향과 맞닿아 있으며,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 Rich Iggy, GGM Kambo/Soulja 등 신세대들이 보여준 수사적 태도 역시 남부와의 간접적 연관성을 가진다. 사운드 측면에서도, 장르의 젊은 피들은 분명 Crunk의 후신인 Trap 사운드에 대단히 많은 빚을 지고 있을 테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세대의 기수들이 남부를 호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며, 본작 <iGoofyManeTellem>은 이러한 흐름을 근래 가장 노골적으로,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포착한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