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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EGMAFIA - EXPERIMENTAL RAP : 이 '실험적 랩'에는 실험이 없다.

by 이승원|

cover image of JPEGMAFIA <EXPERIMENTAL RAP>
JPEGMAFIA <EXPERIMENTAL RAP>AWAL

현대 실험주의 힙합의 거장 JPEGMAFIA가 새로운 앨범 발매 소식과 함께 많은 마니아들을 당황케 했다. 그 앨범의 타이틀이, 다른 무엇도 아닌 <EXPERIMENTAL RAP>이었기 때문이다. 장르의 명칭을 그대로 작품의 타이틀로 삼는 일은 확실히 흔치 않은 일이다. 특정 장르명이나 음악 용어 같은 메타적 타이틀을 고스란히 표제로 직설하는 행위는 대개 지독한 자의식 과잉의 산물이거나, 얄팍한 야망의 부산물이거나, 판을 무리하게 키운 컨셉 놀이의 일환인 경우다. 예컨대 본인의 데뷔작을 씬의 새로운 클래식으로 (스스로) 선포한 Iggy Azalea의 <The New Classic> 같은 경우를 ‘지독한 자의식 과잉’ 혹은 ‘얄팍한 야망의 부산물’의 사례로 볼 수 있겠고, 갖가지 음악 용어들을 마구잡이로 나열한 세븐틴의 ‘MAESTRO’ 같은 경우를 ‘무리한 컨셉 놀이’의 예시로 볼 수 있겠다. 성공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히 낮은 확률의 도박수라는 사실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무리 당황스러운 행보라 한들 JPEGMAFIA 정도의 실력자가 이토록 위험한 판국을 ‘그냥’ 펼쳐놓았으리라 추측하는 일은 비합리적이다. 그가 지금껏 찍어온 발자취의 크기를 고려해 본다면 오히려 그의 타이틀 선정에 심오한 의도나 합당한 야심이 담겨 있다 보는 편이 더욱 합리적인 접근이다. 그렇다면 왜 ‘EXPERIMENTAL RAP’인가? ‘EXPERIMENTAL RAP’이 내포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의 의중을 가늠하기 위해 우선 ‘EXPERIMENTAL RAP’이라는 언어 자체부터 파고들어 본다. experimental이라는 형용사는 대개 ‘실험적인’ 정도의 우리말로 번역된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실험적인’ 것이란 “무언가 새로운 방식이나 변화를 시도”하거나 무언가를 “실제로 경험하거나 시험하는” 것 정도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경우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인다. JPEGMAFIA 본인 역시 전자의 의미로 experimental이라는 단어를 썼을 확률이 높다. 100%에 수렴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EXPERIMENTAL RAP’이라는 타이틀이 내포하는 의미를 세 가지 정도로 추려볼 수 있다. 첫째, 단어 그대로 ‘실험적인 랩’ 그 자체를 뜻한다는 가설, 둘째, 실험적인 성격의 랩/힙합 음악을 뜻한다는 가설, 마지막 셋째, experimental rap 혹은 experimental hiphop이라는 동명의 장르 자체를 뜻한다는 가설. (마지막 가설이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다.)

가장 확률이 낮은 첫번째 가설에 입각하면, 본 작품은 철저히 실패한 작품이다. <EXPERIMENTAL RAP>속 JPEGMAFIA의 랩에는 실험적인 구석이 전혀 없다. 작품 내 모든 플로우와 수사가 예측 가능한 영역에 머무름은 물론, 대부분의 과정에서 전작의 작법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 심지어, 그가 <Veteran>이나 <All My Heroes Are Cornballs> 같은 걸작들을 통해 떠오른 이후를 기준으로 할 때, 본작의 랩 구성은 그의 커리어 중 가장 낮은 완성도를 보인다. 물론 JPEGMAFIA라는 인물이 누구처럼 강건한 랩 피지컬이나 벌스의 정교한 완성도 등을 무기로 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오히려 특유의 변칙적인 사운드 레이어에 랩이 일정 부분 의존한다 보는 것이 그간의 합리적인 평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랩은 꾸준히 완성도와 창의성을 더해가고 있었고, 비교적 최근인 <I LAY DOWN MY LIFE FOR YOU>, <SCARING THE HOES> 같은 작품에서는 그의 벌스 자체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부분이 제법 있었다.

<EXPERIMENTAL RAP> 속 JPEGMAFIA의 랩은 그런 맥락에서 더욱 실망스럽다. 다층적인 사운드 구성에 얹혀가는 플로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조로우며, 랩 그 자체로 어떠한 미학적 긴장감도 유발하지 못한다. 일례로 2번 트랙 ‘babygirl’은 직전 수록곡 ‘SIN MIEDO’의 열화 버전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운드의 과감한 낙차에서 오는 재미가 반감됐음은 물론, 우악스러울지언정 듣는 재미 자체는 있었던 그의 랩 또한 한층 지루해졌다. 특히 곡의 초반부터 후반까지 가리지 않고 쓰이는 3음절 랩 구성은 2분도 채 되지 않아 작품을 매너리즘에 봉착시킨다. 그 다음 트랙인 ‘Burning Hammer’ 같은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인데, 오히려 이 쪽은 통통 튀는 프로덕션의 감흥을 JPEGMAFIA의 단조로운 랩이 전적으로 방해한다. 같은 방식으로 프로덕션의 흥미를 저해하는 17번 트랙 ‘New Era’의 뜬금없는 속사포는 그 의도조차 의심스럽다. 본 트랙들은 차라리 그의 초기 작업물처럼 랩의 존재감을 줄이고, 사운드 뒤편으로 물러서게 하는 편이 훨씬 듣기 나았을 것이다.

뒤이어 검증해야 할 두번째 가설, <EXPERIMENTAL RAP>이 어떤 실험적인 경향의 랩/힙합 음악을 뜻한다는 가설 하에도 본작은 실망스럽다. 본작은 ‘실험적인’의 사전적 정의를 따르는, 다시 말해 “무언가 새로운 방식이나 변화를 시도”하는 앨범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작품은 상당 부분 자기참조적이다. 그는 25트랙에 달하는 방대한 캔버스에, 본인이 이미 팔레트에 짜둔 물감을 유사한 방식으로 다시 칠했을 뿐이다. 그 소리가 그 자체로 흥미로운지에 대한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기존과 같은 결을 노골적으로 고수하는 작품을 ‘실험적’이라 지칭하기는 어려울 노릇이다. 종종 등장하는 브로스텝 사운드 정도가 기존과 약간의 차이를 두지만, 그것 역시 신선하게 다가오지 못한다.

그럼 이건 어떨까. <EXPERIMENTAL RAP>이 Experimental Hiphop 혹은 Experimental Rap으로 통용되는 장르명 그 자체를 뜻한다는 마지막 가설. 이 방향으로 해석할 경우, 반복적인 작법에 머무르는 본작을 <EXPERIMENTAL RAP>이라고 칭할 합당한 맥락이 갖춰진다. JPEGMAFIA 본인이 이미 해당 장르의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이력을 다시 복기하는 행위에 장르의 이름을 내걸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나는 그가 장르의 상징적 위인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 그는 분명 현대 익스페리멘탈 힙합의 방법론적 방향성을 제시한 예술가 중 한 명이고, 동시에 해당 씬 전체를 대표하는 스타 중 하나다. 이런 거대한 예술가의 커리어를 훑어 모아 되짚는 작품에 장르명 자체를 붙이는 것이 아예 터무니 없는 행위는 아니다. Bjork의 커리어를 갈무리하는 작품에 ‘Art Pop’ 같은 제목을 붙인다 하여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허나 이러한 전제라면 작품은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더 정교하게 자기참조적이었어야 했다. 본작이 목표하는 셀프-오마주는 스스로의 찬란한 과거 유산을 과감하게 해체하고, 이를 현재의 시각을 통해 재맥락화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본작의 소리는 JPEGMAFIA의 찬란한 과거를 제대로 해체하지도 못하고, 이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지도 못한다. “왜 다시 발화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합당한 당위도 없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디스코그래피를 영리하게 재해석하는 대신, 그 어떤 예술적 거리감 없이 과거의 파편들을 성의없게 나열하는 데 그친다. 타 아티스트가 이런 식으로 그의 커리어를 갈무리했다면 그나마 상황이 나았겠지만, 본인 스스로 본인의 기법을 이렇게 성의없이 되풀이하는 일은 아티스트의 미학적 나태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JPEGMAFIA의 이 ‘실험 없는 실험 음반’을 되돌아보며, Experimental Hiphop/Rap이라는 장르 씬의 최근 경향을 한번 떠올려 본다. 어느 순간부터 ‘실험적 힙합’이라는 표제 자체가 장르 내에서 그 원론적 정의를 상실해 버리지 않았나? Experimental Hiphop이라는 하나의 장르 씬은, 그저 JPEGMAFIA나 Injury Reserve, Death Grips 등이 제시한 몇 개의 매력적인 방법론을 페티시즘처럼 추종하며, 그 안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 채 몇 년째 그 주위를 맴돌고만 있지 않은가? 이러한 씬의 부정적 경향성에 고스란히 발목을 잡히는 <EXPERIMENTAL RAP>은, 그 꼭대기의 JPEGMAFIA마저 해당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통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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