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벼운 리듬 위에 묵직한 메시지, ‘Mono’는 전작인 <We Are>와는 정반대 쪽에서 채굴한 원석이다. 아이들이 추구하던 직진과 가미의 올가미를 벗어난 이번 싱글은 여러모로 전과는 다르다. 소연을 필두로 멤버들의 이름이 적혀 있던 크레딧에 icebluerabbit이라는 새로운 페르소나가 자리했으며, 처음으로 피처링을 기용한 것. 또한 꽉 찬 사운드를 내려놓고 하우스 리듬에 올라타며 선보인 여유는 긍정적인 미소를 담았다.
고른 호흡과 리브랜딩은 분명히 성공적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들’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이야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지리스닝을 위해 빚어진 판에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자칫 산만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논바이너리 래퍼 스카이워터(skaiwater)에게 벌스 하나를 맡겼지만 조명을 쐴 틈 없이 스포트라이트가 다시 그룹에게로 돌아가고, 2분 50초의 범위에서 반복되는 멜로디는 흘려 듣긴 좋지만 집중하기엔 단조롭다.
그럼에도 주저하던 손을 다시 손뼉 치게 만드는 힘은 언어적인 요소에 있다. ‘삐처리’로 후킹한 지점을 만들었던 ‘TOMBOY’에 이어서 또 한 번 K-POP의 보이지 않는 금기를 깼다. 매니악하지만 철저히 대중 지향적인 장르인 K-POP, 그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살라”는 주제는 세부를 파고들기 어렵다. 전체에 해당하는 공익성은 많지만 소수의 정체성을 지지하는 움직임은 희미했다. 이러한 지형에서, 아이들은 “네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성(性)을 택했든” 모습 그대로 자유로울 것을 지지한다. 특기할 점은 여기에 있다.
눈썹을 탈색하거나 활동기에 정상 체중을 유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코르셋” 논란에 휩싸이는 곳이 K-POP이다. 특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타겟이 되는 곳에서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길 바라는 지지의 메시지는 그 자체로 역설이다. 하지만 분명히 필요한 문장이며, 그것을 어느덧 씬의 대표 이름값 중 하나가 된 그룹이 읽어낸다는 데 의의가 있다. 모두가 바삐 성과에 투자하는 현장에서 아이들은 의미에 시간을 투자했다. 장르 특유의 감각적인 비주얼라이징과 함께 소구력도 놓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정체성이란 객관적인 대상처럼 존재하는 어떤 산물이 아니다. 정체성이 귀중한 이유는 우리가 각자의 인간적 상황에 맞서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수행적 가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_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현 세대는 많은 곳에서 부정당하며 귀중한 가치를 잃는다. 이런 때면 무릇 누군가의 말을 절실하게 찾게 마련이다. 나에게 핏(Fit)한, 나를 향한. 통용되는 슬로건 너머 한 명 한 명을 챙기는 세심함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 XG 코코나가 논바이너리임을 드러내고, 캣츠아이의 두 멤버가 바이섹슈얼임을 밝히는 등 K-POP의 테두리에서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K-POP의 중심에서 발생한 이 외침이 중요한 이유다. 이름에서 ‘여자’를 뗀 아이들이 소외당한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기수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