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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기만 하면 안 되나요? -- 큐티 스트릿과 ‘카와이이’의 부분적 옹호

by 이한수|

cover image of CUTIE STREET ‘귀엽기만 하면 안 되나요?’
CUTIE STREET ‘귀엽기만 하면 안 되나요?’KAWAII LAB.

일본 걸 그룹 큐티 스트릿(CUTIE STREET, 약칭 큐스토)의 인기가 심상찮다. 유튜브 엠카운트다운 영상 조회수는 무려 1000만 회를 넘겼으며, 주변에서도 큐스토나 아야노에 귀의했다는 간증이 종종 들려온다. 바이럴 마케팅과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룰 수 없는 성과다. 그렇다면 혹시 이들의 귀여움엔 무언가 특별한 비밀이 있는 걸까? 그나저나 이들의 말처럼 정말 귀엽기만 해도 괜찮은 걸까?

아소비 시스템의 아이돌 프로젝트인 카와이이 라보(KAWAII LAB.)는 일본의 ‘카와이이’(かわいい)가 가진 매력이 전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무기라고 믿는다. 포켓몬스터나 산리오 같은 IP 신화를 보면 이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큐티 스트릿은 이러한 신념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온몸을 카와이이로 치장하고 열도 바깥 대한민국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런데 이 카와이이라는 거, 새로운 게 하나도 없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요모타 이누히코는 저서 <가와이이 제국 일본>에서 카와이이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남성의 피지배 구조에 놓이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으며 카와이이가 은닉하는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귀엽기만 하면 안 되나요?’의 가사는 이 오래된 비판에 직격타를 맞는다. “이렇게 귀여운 날 봐서 제발 용서해 줘 부탁해”, “이 정도 이리 귀엽다면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잘해줘 좀 잘해줘”, “최고의 귀여움을 봐서 제발 지켜 줄래 부탁해”.

8년 전 <프로듀스 48>에서 일본 참가자들이 받았던 퍼포먼스 지적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창력은 언급하기도 어렵고 안무 역시 율동의 진화 버전이다. 2020년대에 들어서서 케이팝 시스템을 수용해 성과를 낸 XG, HANA 같은 그룹이 있는데도 10~15년 전 AKB 사단과 사카미치 시리즈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개선의 시도조차 안 보인다. (일본 아이돌이 음악 바깥의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야 흔하지만, 지금 큐티 스트릿이 카와이이를 추구하기 위해 일부러 가창력과 퍼포먼스를 내려놓고 있는 건가? ‘口から音源’이라는 공식 쇼츠를 봤을 때 의도한 건 아닌 듯하다. 카와이이를 우선하면서 노래와 안무가 후순위로 밀려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 시장은 이들을 환영한다. 카와이이는 그대로인데 한국이 바뀌었다.

10년 전 대한민국은 자신의 성장 서사를 믿었다. 한류가 전 세계를 삼키고 있었고, 노력과 자기 계발은 여전히 유효한 도덕이었으며, 완벽주의는 비판이 아니라 미덕이었다. 여기에 여성주의도 급부상했다. 성장 서사는 ‘귀엽기만 하면’을 부정했고, 페미니즘은 ‘귀여우니 봐 달라’를 경멸했다. 카와이이가 들어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양쪽 다 지쳤다. 노력해도 집 한 채 못 사는 나라에서 성장 서사는 농담이 됐고, 워키즘도 하락세를 맞이했다. 이젠 AI한테 밥그릇까지 빼앗길 처지다. 사회적 분열과 배금주의의 만연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쩍쩍 갈라졌다. 2026년 한국은 관용을 잃었다. 이렇게 척박한 서울 땅 조각에서 '카와이이'는 너그러움의 싹을 몸소 틔워 보인다. ‘실수해도 괜찮다’, ‘지각해도 봐준다’, ‘노력하니 용서한다’에는 당근과 채찍이 없다. 10년 전이라면 돌팔매질이나 당했을 텍스트가 이젠 숨구멍으로 기능한다.

“귀엽기만 하면 안 되나요?”에 대한 대답은 “된다”가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다. 완벽한 퍼포먼스, 완벽한 자기관리, 완벽한 도덕성.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는 존재할 수도 없고 만약 존재한다고 해도 재수가 없다. ‘귀엽기만 하면 안 되나요?’는 그 대칭점에 존재하는 관용의 가치를 카와이이라는 형태로 복원한다.

그러나 위험은 이 비일상을 일상으로 끌어오려는 욕망에서 발생한다. 무대에서 작동하는 용서의 경제를 실제 사회관계에 이식하려 하거나, ‘귀여우면 다 봐준다’라는 가사의 논리를 삶의 윤리로 번역하려 할 때, 요모타의 비판과 <프로듀스 48>의 비판이 다시금 유효해진다. 무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의 대척점에서 불완전의 귀여움을 긍정하는 J-, 비일상적인 무대 위에서만 허용된 일상의 대안으로서의 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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