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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사이저 속 미소녀, 아일릿 <BREAK EVEN>

by 정기엽|

cover image of ILLIT <BREAK EVEN>
ILLIT <BREAK EVEN>BELIFT LAB

아일릿의 지난 모든 EP에서 두드러지는 소리는 신디사이저다. ‘Magnetic’의 아르페지오 신스, ‘Tick-Tack’의 게임을 연상시키는 리듬과 따스한 배경음, ‘It’s Me’의 날카로운 훅까지. 썸부터 직진형 짝사랑 등 콘셉트의 농도에 따라 변형은 갖추지만 늘 그랬다. 짝사랑 서사의 최종장인 <BREAK EVEN>은 내용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한껏 고조된 양상을 띤다. 상대를 대하는 태도는 어느 때보다 날이 서 있고, 신디사이저도 전례 없이 거친 연주를 뿜는다.

앞선 네 장의 음반의 오프닝 트랙들은 비교적 잔잔한 기조를 유지해 왔고, ‘Super in Love’도 전반부는 마찬가지다.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티 페리 등 2010년대 흥행한 팝스타들이 떠오르는 멜로디의 1절, 2절이 끝날 즈음 마치 오류라도 난 듯 짧은 신디사이저의 충돌이 인다. 이후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처럼 후주에서 큰 소리로 독주를 이어간다. 복잡한 심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소리임과 동시에, 아일릿에게서 이렇게나 강도 높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나 싶은 충격이 감돈다. 전작의 ‘paw, paw!’가 튠이 걸린 보컬로 재미를 준 곡이라면, 이 곡은 신디사이저의 재치 있는 운용으로 다소 진부하게 풀릴 수 있던 곡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Super in Love’의 흐름을 이어받은 ‘More’에서도 신디사이저는 격동한다. 특히 후렴에서 잔뜩 화음이 쌓인 목소리와 상반되게 찢어질 것 같이 질주하는 신스 연주는 ‘It’s Me’의 급진적인 변화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예쁘게 다듬은 후렴과 “못 참아, 유죄” 같은 대사는 그 변혁에 아일릿의 기존 색채를 끼얹었기에 보다 어울리는 모양새다. 멤버들의 표현력도 좋은 요소다. 이로하의 “I want some feedback”, 민주의 랩은 곡이 가진 속도감과 꽤 잘 묻어나며, “열 받아 More, 화나” 반복도 유치할 수 있는 구절임에도 귀여운 투정으로 소화한다.

‘It’s Me’의 충격요법은 지금을 위했던 걸까. ‘체포하겠어’는 아일릿의 변신에 있어 안정적인 변곡점이 되어준다. 중독적인 멜로디야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와 다름없지만, 소위 ‘뽕끼’까지 더해 2010년대 K팝을 재현한 느낌을 준다. ‘Almond Chocolate’이 러블리즈가 떠오르는 콘셉트를 가졌다면, ‘체포하겠어’는 티아라가 생각난다. 탁하는 스네어가 특징인 도입부터 호루라기 소리, “미란다를 불러 물어볼 게 많아” 같이 귀를 잡아끄는 파트가 넘쳐난다. 2번째 EP 수록곡 ‘IYKYK’의 키워드 “최애 아이스티” 와 3번째 EP 수록곡 ‘jellyous’의 “Jelly” 그리고 커리어 내내 꾸준히 거론되는 연락 수단 “DM” 까지 모두 등장하는 가사마저도 상대에게 던지는 최후의 일격, 필살기 같다.

본작의 모든 트랙이 설득력 있었지만, 가장 돋보인 곡은 ‘Pop’이다. 기존의 좋은 시도를 모두 집약한 결과물이라 짚을 만하다. 훅 부분의 “You make me 쿵, You make me 캬” 는 ‘NOT ME’ 속 “They call me LIT, They call me IL-LIT” 나열을 불러일으키고, 2절의 기계음 섞인 목소리는 ‘paw, paw!’의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게다가 중간중간 ‘Lucky Girl Syndrome’의 리프를 재즈풍으로 재구성해 실었는데, 이 사랑이 긍정적으로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유효한 반복이다. ‘체포하겠어’는 아일릿의 서사를 이었고, ‘Pop’은 아일릿의 사운드를 품었다. 그야말로 ‘아일릿 코어’ 종합 선물 세트다.

‘It’s Me’의 급커브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지만, 아일릿은 참 안정적인 퀄리티로 여러 음반을 완성해 왔다. 데뷔곡 ‘Magnetic’의 대성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히트곡을 남긴 것이 그 증거다. ‘체포하겠어’도 차트를 순항하며 여러 사람의 뇌리에 그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지 않은가. 여러 얼굴의 신디사이저와 좋은 궁합을 띠는 목소리가 서린 <BREAK EVEN>에는 프로덕션 측면에서의 확신이 보인다. 아일릿이 음악으로 한 계량과 저울질 끝에 맺은 완전한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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