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드럽게 부는 모래바람을 닮은 첫 소절이다. 온음계로 흐르다 반음계에 도달하는 멜로디는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그 결론을 유예한다.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코드로 운을 떼는 신시사이저 소리에 1990년대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마지막 아날로그 시대였던 이 시기 가요는 기다림과 회상이 주요 정서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계류된(suspended) 코드, 부유하는 텐션음, 긴 패드음과 지연된 해결로 드러난다. 이는 즉각적인 해소와 명료함을 중시하는 2000년대 이후 디지털 환경과 대비된다.
이 곡은 당시 팻 메시니(Pat Metheny) 계열의 컨템포러리 재즈 스타일과 맞닿아 있다. 1990년대 이 같은 곡이 많았던 것은 사색적이면서 비밥이나 블루스처럼 난해하진 않은 긴 호흡의 멜로디가 대중가요의 문법으로 흡수되기 쉬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의 결과로 윤상, 김현철을 중심으로 한 몽환적이고 도회적인 모호함이 하나의 시대적 스타일로 굳어졌다. 라디오, 카세트, 자동차, 밤거리와 유독 잘 어울리는 곡 분위기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도시화 이후 개인이 느꼈던 사회적 고독을 음악이 잠재워주는 효과로 기능했다. 안녕의 온도의 이번 싱글 역시 느린 템포의 보사노바 풍으로 이를 이어가며 다시 도달할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현재의 감정을 재현한다.
2026년에 이러한 문법의 노래를 발표한 것은 답습이라기보다 정서적 재현에 가깝다. 작곡가 정상이가 밝혔듯, 이 곡은 ‘우에다 쇼지’ 사진전에서 시작됐다. 모래언덕에 서 있는 인물들의 함축적인 미장센은 곡의 첫 소절과 입체적으로 오버랩된다. 구체적인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자아내는 감성을 추상적이고 관조적으로 담아내는 표현법이다. 사진 속 무심한 듯한 인물들의 초현실적인 배치가 코드의 잔향을 느끼게 하는 여백, 해결되지 않은 텐션음의 배치와 공명한다. 과거 김현철과 이소라가 함께한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가 그러했듯, 실종된 사랑 혹은 지나간 시간을 애틋하게 여기는 흐릿한 정서가 이어진다. 윤석철을 필두로 한 그룹인만큼 이러한 재즈와 가요를 결합한 스타일의 구사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렇다면 이 곡은 한국 가요씬의 ‘노스탤지어’ 흐름과 맞닿아 있을까. Y2K발 시티팝 열풍, 뉴진스의 ‘Ditto’, 여러 방식으로 이어진 과거 곡 리메이크까지, 수년 전부터 형성되어온 흐름에 편승하는가 싶지만 결은 다르다. 전자는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소비하는 측면이 강하다면, 이 곡은 정서 면에서 당대의 밀도를 재현하는 쪽에 가깝다. 차트 중심의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현시대에 결핍된 순수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감정을 충족한다. 최근 김광진 콘서트 관객의 절반 이상이 2030 세대일 정도로 1990년대 감성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과 부응한다. 윤석철 역시 꾸밈없는 담백한 보컬로 이 곡을 소화했다는 점에서, 이 곡은 한국 가요 씬에 과거를 호출하는 ‘정서의 주춧돌’을 다시 놓는 역할을 한다.
곡은 끊임없이 반음계적인 코드 변화를 시도하며 밝음과 어두움 사이를 넘나든다. 이는 어느 한쪽으로 단정할 수 없는 회색의 컬러로 구현된다. 9도, 11도와 같은 텐션음들은 코드의 색채를 흐릿하게 만들며 잔향으로 여백을 만든다. 청자는 명확한 감정 라벨을 부여받는 대신 그 빈칸을 각자의 기억으로 채우게 된다. ‘그때의 온기’, ‘헝클어진 마음’, ‘희미해진’ 같은 가사들은 이러한 요소들과 합쳐져 일렁이는 듯한 마음을 표현한다. 여기에 곡 전체를 지탱하는 베이스의 5도 움직임은 묵직한 공간감을 부여하고, 송남현의 솔로 연주로 아웃트로를 장식하며 재지한 여운을 남긴다.
윤석철의 보컬은 소박하게 읊조리며 곡의 균형을 잡는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마지막 가사 ‘내 마음에’에서는 글리산도로 미끄러지듯 밴딩 처리를 하며 앞선 악기들의 운용을 목소리로 이어받아 매듭짓는다. 피아노를 연주하듯 계산된 보컬 가창이 돋보인다. 연주자의 관점에서 음을 배치하는 담백함이 우에다 쇼지의 ‘무심한 인물들’과 닮았다. 소담한 가사와 팝적인 색채가 짙었던 EP <느껴봐>(2019)를 비롯한 전작 싱글들과 달리 재즈로 1990년대의 정서를 세웠다는 점에서 결이 다른 행보다. 흐릿한 모래바람 속에서 종결을 유예하는 엔딩처럼, 이 곡은 과거를 현재에 겹쳐 두며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안녕의 온도’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