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고전 음악의 매력을 물으면, 연주자마다 곡을 해석하는 손길이 다른 점을 자주 꼽는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대중음악에 대입하더라도 유효한 답변일 테다. 작곡가가 그려놓은 밑그림을 빼어나게 구현하는 가수에게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이 주어지고, 자신의 것을 섞어 새롭게 재해석한 리메이크를 두고 “성공적인 리메이크”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면 싱어송라이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일까?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이 EP를 증거로 첨부하고자 한다.
음악적인 측면을 주도적으로 가져가는 뮤지션의 경우, 디스코그래피 자체가 자기 해석의 결괏값이라 생각한다. 청자로선 그 타임라인을 지켜보며 점차 화자를 이해하게 되는 장기전에 뛰어드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여러 곳에서 호평을 받은 강지원의 <Ordinary Ever After>는 그간 어쿠스틱, 재즈에 행해 온 탐구가 빛을 발한 사례다. 듣기 편하지만 단순하지만은 않은 요소들로 팝을 뛰어나게 길어 올렸다. 작업자가 복잡한 로직을 헤쳐 완성한 가벼움에 더 자주 손이 갔다. 여러 연구자가 머리를 맞대 완성한 라면 스프, 일반 패딩보다 더 자주 입게 되는 경량 패딩과 같달까.
그런 첫 정규 앨범의 후속타로 이상한 면모를 표제 삼은 <but be odd now?>는 보편성 이면에서 자신만의 것을 살포시 꺼낸다. (실상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시선에 따라 이상하다고 읽힐 수 있는 개인의 무기, 장점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말이다. 첫 곡인 ‘Oddebla’에서부터 어딘가 본인을 닮은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는데, 전작 <Ordinary Ever After>나 싱글들, 커버 영상을 주로 올리던 유튜브를 탐독한 청자라면 더욱 익숙해할 손길이 느껴진다. 일종의 시그니처를 지니는 건 연주자에게 최상의 장점일 테다. 이러한 각인을 첫 정규작과 두 번째 EP에 고스란히 새겼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타잔이 떠오르는 도입과 퍼커션 때문에 아프리칸 리듬 속에 보컬을 옮겨 놓은 듯한 ‘Da Capo’에도 트레이드 마크는 존재한다. 나른하게 풀어낸 강지원의 가창도 그렇지만, 김춘추의 전자 기타 연주도 짧게 곡을 환기해 주면서 동시에 특유의 기풍을 더한 것. 비슷한 주제를 역동감 있고 장난스레 표현한 ‘Too Shine on me’에 비해 시니컬한 태도의 가창도 돋보인다. 놀이도감에서 함께 연주하는 두 연주자가 다시금 뭉쳐서인지, 놀이도감에서 보였던 시니컬함에 영향받은 건 아닐까 해석해 본다.
시니컬의 농도가 더 짙은 곡은 ‘Santa says’인데, 여기선 거친 가사도 서슴지 않는다. 2022 네이버 VIBE, 온스테이지 프로젝트 일환으로 리메이크했던 ‘White Christmas’와는 정반대의 뉘앙스로 산타를 양껏 비아냥거린다. “네 말은 틀릴 리 없으니까.” 많은 계산 끝에 다듬은 편안함은 여기에도 있다. 신디사이저, 기타, 두드림과 내리침 중간 지점을 확보한 드럼까지 어느 하나 과잉이 없다. 2절의 고조되는 구간도 노랫말이 나타내는 켜켜이 쌓인 불만을 폭발하는 기폭제로 작용했으니까. 아이유 ‘관객이 될게 (I stan U)’를 비롯해 여러 스트링 편곡을 제공한 약력을 뽐낼 법도 하지만, 적재적소에만 깔끔하게 활용해 곡의 감정선을 끌어올렸다.
신곡 세 곡이 마침표를 찍고, 전작의 처음과 마지막 트랙을 편곡해 수록한 두 곡이 등장한다. 건반보다 기타가 강조됐던 ‘Da Capo’, ‘Santa says’ 다음 ‘Catchball’의 기타 버전이 놓인 구조가 안정감을 준다. 원곡과는 다른 질감의 기타가 들어서고, 싱그러운 건반 소리로 문을 닫는 이번 ‘Catchball’에서 매력적인 부분은 동료 뮤지션 김효린, 이끼의 코러스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목소리를 악기들이 감싸던 곡에서 악기는 덜고 목소리를 더하니, 곡이 지니고 있던 자연스러운 멋이 더 살아났다. 게다가 정우와 듀엣으로 부른 ‘the dumbers’가 바통을 이어받으며 여성 싱어송라이터 개개인의 표현력에 더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강지원의 도회적인 목소리와 흩날리는 꽃잎 같은 정우의 노래가 만나 “너의 모든 다름을 사랑해” 라는 구절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다.
한 음반의 후속편은 수용자에게 제법 반가운 선택지다. 흥행한 드라마의 특별 편성, 영화의 감독판이 시리즈 팬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발매한 음악을 한 버전에서 끝내지 않고 다른 편곡으로 즐길 선택지는 그 음반을 꾸준히 즐기는 이들에겐 단비 같은 선물이리라. 국내 뮤지션이 발표한 속편의 성격을 띤 EP는 오래전부터 팝 앨범들의 디럭스 음반을 즐겼던 한 명의 청취자로서도 흐뭇한 광경이다. 좋은 곡의 구석구석을 뜯어먹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 주니까. 몇 년 전 꾸준히 커버 영상을 업로드해 오던 강지원의 셀프 커버에서도 짧은 시간 속 성장한 연주가 느껴져 두 번 흐뭇했다. 보편이 주는 미소와는 다른 희미한 웃음이 도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