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르니가 무덤에서 반가워할 피아니스트가 나타났다.
하농과 체르니. 우리에게 둘은 피아노 학원 책 제목이다. 하지만 원래는 사람 이름이다. 카를 체르니는 베토벤에게 배웠고 리스트를 가르쳤다. 그런 음악가가 연습곡으로만 기억된다는 건, 작곡가로서 억울한 일이다.
그 연습곡을 장난감 삼아 놀다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앨범을 낸 소년이 있다. 독일 바이마르의 열여섯 살, 유스투스 아이히혼. 음반의 첫 트랙은 체르니 50의 14번이다. 그는 왼손 리듬을 바꿔 비트를 입혔다. 이 음반은 독일 클래식 차트 정상에 올랐다. 1997년 집계 시작 이후 최연소 1위다.
3주 새 SNS 팔로워는 50만에서 80만이 됐다. 그는 그중 15~20%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영상 밑에는 우리말 댓글이 줄을 잇는다. 체르니가 섹시할 수 있었나. 나는 열여섯에 뭐 했지. 체르니라는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던 사람들마저, 같은 곡을 가볍게 갖고 노는 소년에게 빠져든 것이다.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클래식을 알리려면 SNS를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긴 대답 속에 한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피아니스트에게는 아직도 고독하고 진지한 천재의 이미지가 뒤따른다. 그런데 그의 피드에는 보조개를 보이며 “Hello everyone” 하고 인사하는 소년이 있다.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듀엣을 하고, 비 오는 들판에 휴대용 건반을 편다. 격식을 갖춘 장면만 골라 올리지도 않는다.
그 단어는 ‘어센틱(authentic)’이었다.

날짜: 2026년 10월 1일
방식: 화상 기자간담회
주최: 더브로드
정리: 이예진
피아노와 축구
한국 기자들과 공식적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에요.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스예요. 독일 바이마르에서 온 피아니스트고요.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고, 무대에서 제 감정을 나누는 걸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에 완전히 빠져 있었어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거든요. 부모님 두 분 다 바이올리니스트라서, 처음부터 음악을 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아, 축구도 좋아해요. 피아노 말고는 그게 제일 좋아요.
그리고 몇 주 전에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첫 앨범을 냈어요. 벌써 반응이 이렇게 와서 신나고 행복해요.

음악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한다고 했죠. 그럼 음악은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음악은 제 삶의 중심이에요. 저랑 관객 사이에 오가는 울림, 공연장의 공기, 그 소통을 느끼는 게 너무 좋아요.
독일은 음악적인 나라잖아요. 여기서 나온 작곡가가 정말 많고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냥 피아노랑 노는 게 즐거웠어요.
더 소스(The Source)
유스투스 아이히혼(Justus Eichhorn), <The Source>
도이치 그라모폰 데뷔 앨범 <더 소스>는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요?
저는 바이마르에서 태어났어요. 독일에서 아주 유명한 도시고, 예전부터 늘 문화의 중심이었죠. 앨범 제목이 <더 소스>인데요, 듣는 분들을 시작으로, 기원으로, 근원으로 데려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바이마르에 '더 소스'라는 의미를 붙여보자고 생각했어요. 저한테 바이마르는 맨 처음이고, 제가 비롯된 곳이니까요.
바이마르에는 정말 많은 작곡가가 살았어요. 앨범에 실린 작곡가는 한 명 한 명 다 바이마르와 특별한 인연이 있어요. 바흐, 리스트, 멘델스존, 슈베르트, 힌데미트, 체르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들이요. 그리고 제가 쓴 곡도 세 곡 넣었어요. 이 작곡가들을 한 앨범에 모아서, 제가 어디서 왔는지, 제 근원이 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향이라는 말은 보통 고향을 떠난 사람이 쓰죠. 그런데 당신은 태어난 바이마르에 여전히 살고 있어요. 고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무엇보다 아주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이요. 가족이랑 친구들이 다 있는 곳이고요. 바이마르는 제가 모든 곳을 다 아는 도시예요. 거기서 태어났으니까 이 도시랑은 늘 아주 개인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문화도 정말 많고요.
고향을 생각하면, 음, 그냥 거기가 제 집이에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곳. 나중에 어른이 돼서 다른 도시에 살게 되더라도요. 베를린일 수도 있고 뉴욕일 수도 있고, 어쩌면 서울일 수도 있고요. 그래도 이 도시에 돌아오는 게 좋을 거예요. 여기 오면 늘 자유롭고 안전하다고 느끼거든요.
체르니
화제가 된 체르니 영상이 앨범에도 실렸습니다. 같은 곡을 두 가지 버전으로요. 왜 체르니였나요?
체르니는 리스트, 바흐, 베토벤 말고도 제가 크는 데 아주 큰 영향을 준 작곡가예요. 어렸을 때 체르니 연습곡을 치기 시작했는데, 여기 바이마르 음악학교에서 레슨을 받을 때 선생님들이 늘 기교 늘리려면 체르니 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체르니는 베토벤의 제자고 리스트의 스승이에요. 그러니까 이 작곡가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죠. 그래서 저한테 체르니는 정말 중요해요.
그 편곡은 어떻게 나왔나요? 곡을 쓰거나 편곡할 때 영감은 어디서 얻어요?
곡을 쓸 때는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려요. 여러 가지 분위기도요. 그러고 나서 결국 뭐가 나올지 저도 늘 엄청 궁금해요. 듣는 사람만큼요.
예를 들어 ‘사일런트 필즈(Silent Fields)’를 쓸 때는 옥수수밭을 떠올렸어요. 옥수수 위로 바람이 흘러가는 거요. 그게 제 머릿속 이미지의 한 예예요.
체르니 편곡도 아주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즉흥으로 왼손 리듬을 쳐보다가, 어, 이거 되게 재밌고 좀 쿨한데? 싶었어요. 그래서 그 위에서 계속 즉흥으로 치고 제가 직접 녹음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결국 이 편곡이 나왔어요. 좋은 화음이랑 리듬을 찾다가 왼손에 딱 맞는 리듬을 발견한 거고, 그걸 체르니 연습곡에 얹은 거죠.
자작곡이 즉흥 연주에서 시작된다고 했죠. 즉흥 연주는 친 다음에 금방 잊어버리기 쉬운데, 이건 곡으로 남겨야겠다는 순간은 어떻게 알아요? 또 어떻게 기억해요?
재밌는 질문이네요. 저는 쉬는 시간에 즉흥 연주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나와요. 자, 이제 즉흥 연주를 해야지, 하고 스스로한테 말하지 않아요. 그냥 저절로 흘러가요.
그러다 가끔 한 곡이 나와요. 재밌는 화음이나 분위기, 멜로디를 찾다가요. 괜찮은 이미지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 위에서 즉흥으로 치고, 좋은 아이디어는 하나하나 바로 휴대폰으로 녹음해요. 그래야 나중에 다시 떠올리고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트랙리스트를 보면 그랜드 피아노뿐 아니라 업라이트 피아노 버전도 있어요. 왜 업라이트 피아노를 골랐나요?
그 피아노 소리가 너무 흥미로워서 정말 놀랐어요. 제가 보기에 앨범의 몇몇 곡은 그 소리의 세계, 그 분위기에 완벽하게 맞았어요. 그래서 도이치 그라모폰이랑 같이, 몇 곡은 이 악기로도 연주하자고 정했어요.
물론 중심은 그랜드 피아노예요. 제가 제일 사랑하는 악기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새로운 소리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아해요. 최근에는 영국에서 그 시대 피아노로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든을 연주했어요. 저는 그런 소리의 세계에 관심이 많고, 늘 열려 있어요.
굴라시와 베토벤
음악이나 음악 만들기에 큰 영향을 준 작곡가나 음악가가 있나요?
제가 크는 데 큰 영향을 준 작곡가가 꽤 있어요. 먼저 당연히 바흐요. 아주 어릴 때 크리스마스마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들었는데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제 생각에 바흐는 아주 보편적인 작곡가예요. 음악에 구조가 있고, 정말 논리적이에요. 그래서 세상 누구든 바흐 음악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저한테 아주 중요한 작곡가는 베토벤이에요. 피아니스트라면 꼭 거쳐야 할 작품을 정말 많이 남겼어요. 저는 그냥 베토벤 음악이 좋고, 그 혁명적인 방식이 좋아요. 베토벤은 규칙 깨는 걸 아주 당연한 일처럼 했어요.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냈죠.
마지막으로 리스트요. 쇼팽 말고 피아노 작곡가라면 리스트죠. 리스트도 바이마르 사람이라 저는 늘 개인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느꼈어요. 아주 어릴 때 바이마르에 있는 리스트의 집에 가서, 그가 쓰던 피아노랑 가구 같은 걸 봤어요. 이 작곡가들은 저한테 정말 중요해요. 저를 앞으로 데려가 줬고, 제가 크는 동안 몇 가지 가르침도 줬어요.
재미있는 질문 하나 할게요. 방금 말한 바흐, 리스트, 베토벤을 열여섯 살 때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면, 누구와 하루를 보내고 싶어요?
음, 다 흥미로울 것 같아요. 그런데 유명하면서 어린 작곡가를 만날 수 있다면 사실 저는 모차르트를 만날 거예요. 어렸을 때의 모차르트가 제일 흥미로운 작곡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이 셋 중에서 골라야 한다면, 아마 베토벤이요. 그때도 이미 의지가 강하고 혁명적인 성격이었을 것 같아요. 같이 굴라시를 먹으면 재밌을 것 같아요. 베토벤이 굴라시를 정말 좋아했대요. 헝가리 음식인데 독일에서도 많이들 먹어요. 그렇게 먹으면서 베토벤한테서 재밌는 이야기를 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클래식 음악에는 전통과 규칙이 많죠. 깰 수 있다면 깨고 싶은 규칙이 있나요?
규칙을 하나 깰 수 있다면, 작곡가가 말한 걸 정확히 그대로 해야 한다는 규칙이요. 해석하는 사람도 결정할 수 있고, 자기만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규칙을 따르는 건 늘 아주 엄격하고, 많은 음악가가 그렇게 하죠. 그런데 늘 작곡가가 말한 대로만 하면 정말로 자유롭고 자연스러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 재미도 없을 거예요. 모두가 작곡가가 말한 대로만 하면 모두가 똑같은 소리를 낼 테니까요. 음악이 멋진 건, 곡을 해석하는 방법이 이렇게나 다양하고 여러 가지라는 거예요.
(통역이 끝난 뒤 그가 다시 마이크를 켰다.)
아, 하나 덧붙이고 싶어요. 당연히 작곡가는 정말 중요해요. 작곡가가 말한 걸 하나도 안 하면 안 되죠. 결국 그건 작곡가의 곡이고, 작곡가가 중심이에요. 그래도 곡을 다르게 연주하는 방법은 있다는 거예요. 물론 작곡가가 한 일, 작곡가가 한 말을 무시하면 안 되고요.
카메라 앞과 뒤
SNS 활동이 아주 활발하죠. 어떻게 시작했나요?
SNS는 3년 전에 시작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됐어요. 그냥 거실에서 피아노 치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휴대폰 들고 제가 치는 걸 찍은 거예요. 오케스트라랑 한 연주회 영상 일부랑, 사람들 반응을 찍은 것도 올리기 시작했고요.
그러다 사람들이 제 음악에 공감하고 좋아해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점점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지금은 이렇게 많은 분이 제 영상을 좋아해주고 팔로우해주셔서 행복해요.

영상을 보면 공연장뿐 아니라 박물관, 비 내리는 야외, 창고 같은 곳에서도 연주했어요. 공연장 밖으로 나가는 이유가 있나요?
창고나 풀밭, 기차 같은 데서 연주하는 건, 음, 꽤 재밌어요. 그리고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든 닿고 싶어서예요. 그 영상을 가끔 SNS에 올리는 거고요.
물론 그런 데서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제일 즐거운 건 진짜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거예요. 예술의전당이나 유럽의 다른 멋진 공연장에서 이미 연주해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즐거웠어요. 앞으로도 멋진 공연장에서 꼭 치고 싶어요. 카네기홀이나, 서울이라면 롯데콘서트홀이요.
SNS로 클래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요?
SNS에서는 아주 어센틱하고 개인적인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어요. 요즘 세상은 아주 디지털이잖아요. 거의 모두가 휴대폰이 있고 모두가 SNS를 써요. 그러니까 카메라 앞에서도 카메라 뒤에서와 같은 사람이어야 해요. 영상을 찍을 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자기가 그런 사람인 것처럼 연기하면서 남들한테 이미지를 주려고 자기를 바꾸면 안 돼요. 그냥 자기 자신이어야 하고, 어센틱해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에게 닿아요.
저는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클래식을 들려주고 싶어요. 가끔은 보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생각해서 트렌드를 따라야 할 때도 있겠죠. 대부분은 팝이나 다른 장르를 즐기고, 세계 인구 중 클래식을 정말로 듣는 사람은 소수예요. 그래도 저는 평소에 클래식을 안 듣는 사람들까지 제 피아노로 빠져들게 하고 싶어요.
팔로워가 80만 명이에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당신에게 열광한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한 것처럼 어센틱하려고 해서가 아닐까요. 그게 중요하니까요. 사람들이 그냥 제가 음악 하는 방식을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몰라요. 제 여정을 따라올지는 결국 보는 사람, 듣는 사람이 정하는 거니까요. 저는 짐작만 해볼 뿐이에요.
2024년 앨범에 실린 자작곡 ‘스카이스크레이퍼스 인 뉴욕’은 팝처럼 들려요. 앞으로 팝 뮤지션과 협업할 생각도 있나요?
저 팝도 정말 좋아해요. 클래식은 매일 하니까, 쉬는 시간엔 다른 장르를 듣고 싶어요. 팝이나 재즈 같은 거요. 팝 가수나 팝 밴드랑 협업하는 것도 아이디어일 수 있겠네요. 멋진 음악가가 정말 많으니까요.
한국 팝 그룹이라고 하면 바로 BTS나 블랙핑크가 떠올라요. 언젠가 그 팀들이랑 협업하면 정말 좋겠어요.
열여섯 음악가가 본 AI
그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컴퓨터가 사람의 감정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1년 사이 생성형 AI는 작곡과 연주의 안쪽까지 들어왔다.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요? 끝까지 인간 음악가만 가질 수 있는 건 뭐라고 생각해요?
이것도 재밌는 질문이에요. 저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앞으로도 늘 믿을 거예요. AI나 컴퓨터는 사람의 감정,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대신할 수 없다고요. 그게 핵심이에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분위기.
무대 위에 가상의 사람이 있는 연주회에 앉아서 그 음악에 엄청 감동받는 일은 저한테 절대 없을 거예요. 그렇게 하려면 컴퓨터가 정말, 정말 잘해야겠죠. 저는 늘 진짜 사람한테 공감해요. 가상의 컴퓨터나 AI와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진짜 감정 사이에는 늘 차이가 있어요.
저는 그 믿음 덕분에 AI 앞에서도 차분할 수 있어요. 앞으로 AI랑 컴퓨터랑 로봇이 지구를 차지하고 인간은 다시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 믿음이 있어서 저는 그런 말을 믿지 않아요. 이 얘기가 나오면 저는 늘 아주 긍정적이에요.

서울
독일 클래식 차트 1위 축하합니다. 1997년 차트가 생긴 이래 최연소 1위라고요.
네, 정말 기뻐요. 그런데 제 팔로워 중에 사실 한국에서, 서울에서 오신 분이 많아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팔로워 국적을 볼 수 있잖아요. 한국인이 몇 퍼센트쯤 되나요?
15에서 20퍼센트쯤 되는 것 같아요.
열세 살 때 한국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죠. 한국에는 몇 번 왔고, 한국은 어땠나요?
한국엔 벌써 세 번 갔어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랑 김민 선생님과 함께 연주했어요. 제가 느낀 건, 한국 분들이 클래식 음악에 엄청나게 빠져 있다는 거예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요.
한국 분들이 음악에 반응하는 방식이 정말 좋아요. 한국이라는 나라도 좋고 음식도 최고예요. 도시 전체도, 분위기도 너무 좋아요. 서울은 끝내줘요. 거기 있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무대 위에서 관객이랑, 한국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것도요.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짧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제 메시지는요, 곧 한국에 다시 갈 거예요. 연주회에서 여러분 모두 만날 생각에 벌써 행복해요.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 관심 가져주세요. 클래식은 정말 멋진 거고, 제 열정이에요. 이 열정을 여러분 모두와 나누고 싶어요.
한국 분들이 클래식 음악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정말 좋아요. 여러분은 정말, 정말 다정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늘 친절하게 맞아줘요.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기자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자기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고, 그 이야기를 글로 옮겨 사람들에게 전해주려 해서 고맙다고.
그는 끝까지, 닿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Photos courtesy of Universal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