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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iiKiii - <WhyKiiiKiii> : 참을 수 없는 키치의 달콤함

by 이승원|

cover image of KiiiKiii <WhyKiiiKiii>
KiiiKiii <WhyKiiiKiii>STARSHIP Entertainment

진보의 종말

예술이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헤겔의 역사성 개념을 이어받은 <예술의 종말 이후>의 아서 단토(Arthur C. Danto)에 따르면 예술이 어떤 하나의 방향으로 진보하던 시기는 이미 종료되었으며, 현재는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다원주의적 시대다. 애석하게도(?) 그 과정에서 21세기 예술은 새로운 미래를 그려내는 능력과 그 필요를 상실해버렸고, 그렇기에 예술은 역설적으로 과거가 상상하던 미래나 과거의 낙관적 이미지를 계속해서 호출하고 변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완전히 독창적인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해졌고, 기존 스타일의 껍데기만을 가져와 조립하는 패스티시만이 유효하게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팝이라는 분야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이 후기 자본주의 영향의 문화 논리라는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주장에 따라, 자본주의에 가장 가까운 분야인 팝은 작금의 다원주의적 성향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장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의 팝은 예술의 이러한 경향성을 제법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Lady Gaga를 필두로 한 일렉트로팝 시류가 전자음악 성질을 대중의 눈앞에 본격적으로 갖다 놓은 이후로, 최근 십여 년간의 팝은 사실상 지속적으로 과거의 무언가를 탐미하고 변주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엔 트렌드라는 명의로 등장하였던 레트로 흐름 또한 어느새 팝의 가장 정석적인 전략으로 탈바꿈해 버리지 않았나. 시제가 극단적으로 압축되며 역사적 시제 감각은 사라져 버렸고, 과거를 물성적으로 소비하게 되며 미래에 대한 가능성 역시 사라진 셈이다.

패스티시(pastiche) - 진보를 포기하기

선형적 진보가 멸종한 예술의 생리 속에서, 팝의 관건은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효과적으로 모방하는가”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KiiiKiii가 지금껏 보여 온 방향성은 과연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들에겐 무언가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해내려는 무모한 야망 같은 것이 없었고, 오히려 이 정체된 레트로 흐름을 영리하게 유희하고 흡수해내겠다는 합리적 목적이 있었다. 데뷔 때부터 이들은 과거의 특징적 요소들을 거리낌 없이 수용하여 이를 이색적 키치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였고, 특히 올해 초 이들의 EP <Delulu Pack>에선 그 특징적 성질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들은 핀터레스트 같은 곳에서 ‘에스테틱’이라는 명명 하에 범주화되던 여러 파편적 이미지들을 무차별적으로 갈무리하며 이를 정제된 하우스 프로덕션 중심으로 녹여냈고, 흥미롭게도 우리는 그 결과물에서 하나의 일관적인 감각을 감지할 수 있었다.

<WhyKiiiKiii> - 콜라주, 달콤하고 익살맞은.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Delulu Pack>에서 이어지는 후속작 <WhyKiiiKiii> 역시 이들의 이러한 경향성을 견지하는 작품으로, 한층 넓어진 미적 스펙트럼과 특유의 키치로 그룹의 음악적/미적 야심을 드러낸다. 여전히 Y2K 주변의 다양한 에스테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보다 집요한 컨셉 아트 기획과 심도 높은 음악적 이해는 작품의 응집력을 효과적으로 증대시킨다. 2000년대 웹 인터페이스를 재현한 프로모션 사이트, 그 시절 광고들을 노골적으로 재현한 컨셉 아트, 각종 2000년대 상징물로 가득한 뮤직비디오 등의 앨범 비주얼은 일견 다채로우면서도 결국 하나의 추상적 노스탤지어로 귀결되며, 음악 역시 보다 다양한 장르 폭을 수용하지만 결코 해당 컨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덕에 작품은 하나의 에스테틱이나 음악적 스타일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전작처럼 일관적인 감각을 구성하여 보다 발전적인, 보다 복합적인 질감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파편적 에스테틱을 스티커 붙이듯 한 데 모아 한 차원 더 입체적인 콜라주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WhyKiiiKiii>의 접근은 최근 <Fancy That>의 PinkPantheress가 보여주던 접근과 유사해 보인다. 적/청의 대비와 타탄 패턴을 중심으로 영국 Y2K 노스탤지어를 조준한 <Fancy That>의 사례처럼, 본작이 갈무리하는 수많은 노스탤지어 파편은 대체로 ‘한국적’인 경향이 있어서 그 자체로 더욱 독특한 정체성과 예술적 당위성을 획득한다. 2000년대 인터넷 소설 감성을 재현한 ‘SWEET SOUR’의 색채나 매직홀 핸드폰, 슬러시, 야광 스티커 등의 친숙한 오브제들은 2000년대~2010년대를 경험해 본 한국인들이라면 설명 하나 없이도 그 감각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흐름에서, 엄정화의 ‘D.I.S.C.O’를 닮은 ‘Pop Off Pop Off’의 코러스 탑 라인 역시 당대 대한민국의 선율 감각을 상징적으로 패스티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본작이 추구하는 노스탤지어가 디지털적 요소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국가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21세기 초부터 높은 디지털 친화도를 보였던 대한민국의 노스탤지어 역시 컴퓨터나 TV, 핸드폰 등 전자기기와의 필연적 연관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당대 국내의 시류보다 영미권 스타일에 가까운 이들의 패션 방향성 또한 ‘텀블러(tumblr) 스타일’이라는 명명하에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KiiiKiii가 작품의 핵심 에스테틱 중 하나로 채택한 프루티거 에어로는 과연 탁월한 선택이다. 2000년대 인터넷/미디어 디자인 스타일에서 발아한 이 에스테틱은 주로 유리나 렌즈 같은 광택 표현과 맑은 하늘, 푸른 빛의 색상 등으로 특정되는데, 위와 같은 스타일을 통해 KiiiKiii는 여름의 정경과 여행의 낙관성을 시각적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Pop Off Pop Off

타이틀곡 ‘Pop Off Pop Off’는 이러한 경향성을 핵심적으로 집약한다. 프루티거 에어로를 포함한 폭넓은 요소들이 2000년대의 시각적 감각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오토튠을 잔뜩 머금은 Kesha식 일렉트로팝이 당대의 청각적 감각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2000년대의 낙관주의와 프루티거 에어로의 청량감은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곡의 성질에 이식되고, 곡의 정체성 또한 이를 통해 강화된다. 이런 면에서, ‘Pop Off Pop Off’의 패스티시는 레트로를 단순 레트로의 영역에 머물지 않게 하는 영리한 패스티시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적인 요소와 별개로, ‘Pop Off Pop Off’이 멜로디를 다루는 방식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2010년대 복고의 맥락을 공유하는 최근 몇몇의 성공적인 팝 작품들을 살펴보면, 현재는 흔히 ‘촌스럽다’ 여겨지는 당대의 소리들을 패스티시하여 오히려 곡의 특징적 키치 내지는 재미 요소로 역이용하는 경향성을 포착할 수 있는데, 본 곡의 방식 역시 그러한 경향성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앞서 언급한 곡의 코러스 멜로디는 물론, 노골적으로 점층하는 ‘Pop Off Pop Off’의 프리-코러스 구성 역시 비스트의 ‘SHOCK’ 프리-코러스를 차용한 ‘Wrong Number’(The Deep/2025)의 경우나 2000년대 도쿄의 정경을 이식한 ‘リア女’(f5ve/2025)의 작법과 다르지 않으며, 이것이 곡 내의 특징적 키치로서 작동한다.

그럼에도 컨템포러리로 존재하기

단순히 과거를 패스티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몸소 동시대 시류와 소통한다는 점은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Effie를 연상시키는 진취적 구성의 'Candy Pink Magic Hole Flip Phone (나 어떡해)'나 Kero Kero Bonito의 ‘Break’ 뮤직비디오를 재치 있게 오마주한 ‘Pop Off Pop Off’의 뮤직비디오 후반 연출이 특히 그렇고, 동시대 유력자들을 적극적으로 초빙한 작사 구성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전작 <Delulu Pack>이 Omega Sapien과 작가 이슬아를 일부 참여시키는 데 그쳤다면 본작은 아예 씬을 대표하는 여러 음악가들에게 작사를 일임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는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영리한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예컨대, 아침의 설렘을 담은 일렉트로팝 트랙 ‘Ever2Late!’에 토마토맛과 The Deep이 참여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합리적이고, 엉뚱함을 무기로 해야 할 ‘Hey Hi’의 가사를 Lil Cherry가 작성했다는 사실 역시 그럴 듯하다. 창작의 주체를 다원화하는 본 전략이 무조건 긍정적이라 보기는 어렵겠지만, KiiiKiii의 이러한 시도는 아마 씬의 유력자들을 제 편으로 만드는 데도 효과적인 기능을 할 것이다.

작사와 작곡, 편곡의 인상적인 합을 보여주는 'Candy Pink Magic Hole Flip Phone (나 어떡해)'는 이러한 전략이 가장 적절히 들어맞은 사례로, 앨범의 가장 빛나는 트랙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앞서 <E>에서도 다양한 디지털 노스탤지어를 다루는 데 능했던 Effie는, 당장 Effie의 앨범에 수록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이 곡에 ‘매직홀’이라는 탁월한 제재를 끼얹으며 곡의 정체성을 날카롭게 벼려낼 수 있었다. K팝 특유의 대중적 감각과 언더그라운드 팝의 진취성을 적절하게 버무린 이 곡은, K팝이 언더그라운드의 작법을 수용하는 데 있어 굳이 그 과격성을 깎아낼 필요가 없음을 시사하는 대표적 사례가 되기도 한다.

알고 보면 K팝은 근본부터 모방의 미학이었고, 처음부터 새로운 것은 없었다. 미국의 컨템포러리 알앤비와 일렉트로팝, 일본의 아이돌 문화 등 다양한 양분을 토대로 태동한 K팝의 가치는 어쩌면 애초부터 “어떻게 모방할 것인가”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K팝의 놀라운 팽창, 그 틈에서 발아한 <WhyKiiiKiii>는 이 매력적인 패스티시를 통해 우리에게 모방의 그 원론적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훌륭한 모방에는 편견이 없고, 다만 해석이 있을 뿐이다. 이 근원적 가치에 충실한 <WhyKiiiKiii>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후 모든 복고적 K팝의 레퍼런스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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