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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uka - <The Fingerprints> : 움직임, 그 거부할 수 없는 본능

by 이승원|

cover image of Moruka <My Fingerprints>
Moruka <My Fingerprints>Self-Released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키라라의 지도와 함께 생애 첫 앨범을 발표한 젊은 DJ/전자음악가 Moruka는 그녀의 데뷔작 <The Fingerprints>를 “영원히 끝나지 않는 춤”이라 정의한다. 신분과 소개에서 쉬이 예상할 수 있듯 본작은 클럽 전자음악 기반의 작품이며, 그런 부분에서 언뜻 “영원히 끝나지 않을 춤”이라는 그녀의 소개 또한 다소 뻔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춤과 클럽, 전자음악은 오래 전부터 너무나 각별한 친구였고, 한번도 헤어진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춤’은 어쩌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춤과 조금 다를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My Fingerprints>는 분명 댄스 음악에 기반을 두지만 오로지 클럽과 댄스에 천착하는 작품은 아니다. 하드한 베이스와 정글, 브레이크코어 등 다양한 클럽 음악 영향 아래 있는 작품에는 어째서인지 클럽의 전형적 음향과 거리를 두는 소리나 구성, 순간들이 포함되어 있다. 구체 음악 영향의 인트로와 아웃트로 트랙, 모티브 중심의 ‘Rain’ 등에서 보여주는 접근이 특히 그렇고, 비교적 노골적인 댄스 트랙에서 또한 클럽의 호흡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소리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앨범의 소개글을 쓴 정구원은 작품에 이러한 점에 대해 ‘소격 효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기서 만약 그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Verfremdung) 개념을 빌려온 것이라면 그의 표현에는 반박의 여지가 있다. Moruka가 본작을 위와 같이 구성한 까닭은 무대(여기서는 작품)와 관객을 격리시키기 위함이 아니며, 이는 도리어 관객을 무대에 몰입시키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실제로 현실의 구체적 소리를 담은 인트로 ‘o0O’의 구체 음악 구성과 작품의 구체적 소리를 삽입한 아웃트로 ‘O0o’의 구체 음악 구성은 마치 어떤 미로나 ‘백룸’에 있는 듯한 기이감과 몰입감을 자아내며, 작품의 세계관을 압축하여 하나로 연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8 counts dance’나 ‘Time Machine Blast’ 등 각각 댄스 트랙 말미에 삽입된 이질적 아웃트로들 역시 이후 트랙의 모티브를 제시하며 트랙과 트랙을 연결하는 기능을 가진다. 다시 말해, <My Fingerprints>는 하나의 공통된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며, 작가인 Moruka는 여러 장치를 통해 관객을 작품에서 소격하기는커녕 작품 내부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My Fingerprints>는 춤에 대한 작품이지만, 춤과 클럽이 가지는 고정관념과는 멀어지는 작품이다. 이런 면에서, ‘소격 효과’가 문자 그대로 “멀어지게 하는 효과” 정도의 의미라면 그의 표현은 타당하다. 실제로, 서울예대 무용과를 졸업하여 최근 Visla FM ‘마감시간’을 통해 매력적인 디제잉 셋을 선보인 그녀의 독특한 이력은 춤이라는 개념에 대한 다각도의 해석을 요한다. 그녀가 정의하는 ‘춤’은 우리가 생각하는 춤보다 한층 더 넓고, 한층 더 깊은 개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작품이 “오로지 클럽과 댄스만을 위해 복무하는 앨범은 아니”라는 정구원의 표현 역시 탁월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댄스 음악의 일반적 흐름을 때때로 벗어나는 작품의 이 역동적 소리를, 어떤 ‘움직임’에 빗대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본다면 <My Fingerprints>는 어떤 역동적 움직임으로 가득 찬, 움직임에 관한, 움직임에 의한 작품이 된다. 작품에 포함된 모든 소리는 어떤 움직임의 반영이며, 본작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춤”이라는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이 움직임은 모두 춤의 일종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모든 인간과 자연의 움직임을 ‘춤’으로 대하고 있다. ‘52Hertz Whale’ 뮤직비디오에서 이태원 거리를 내달리는 그녀의 모습도, 모스 부호를 기계적으로 찍어대는 신호기의 형상도, 비 내리는 하늘의 어둑한 전경까지도 그녀에겐 모든 것이 춤이다. 그 점에서 그녀의 춤은 대단히 본능적이고, 또 대단히 본질적이다.

물론 그렇다 하여 본 작품이 댄스 음악의 고정관념을 마냥 벗어나기만 하는 작품이라 평한다면 곤란하다. 그녀가 말하는 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좁은 개념의 춤부터 ‘무용’이라는 개념이 포괄하는 신체의 모든 움직임, 나아가 자연물의 우연/필연적인 움직임까지 기꺼이 포함하니까. ‘Battles’의 짜릿한 질주부터 ‘52Hertz Whale’의 반복적인 브레이크비트 타격까지 이어지는 무아지경은 확실히 클럽의 그 어떤 누구도 춤추게 할 만한 것이며, 탁월한 모티브 표현력의 ‘8 counts dance’, ‘Vomit’, ‘Here and Disappear’ 역시 클럽의 토양에서 발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품은 클럽/레이브의 직선적인 열기와 이로부터 벗어나는 모호성을 동시에 아우르며, 그 포용성이 작품의 특징으로서 구체화되는 셈이다.

본작의 타이틀이 <My Fingerprints>, 즉 ‘나의 지문’인 까닭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DJ로 활동하기 이전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클럽이라는 또다른 춤의 세계로 다시 입문한 그녀에게 ‘춤’이란 분명 각별한 개념일 것이다. 그녀 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있어 춤이란 빠질 수 없는 것이며, 어쩌면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일 수 있다. 우리에게 지문 역시 스스로의 신원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 중 하나이며, 다른 누구의 지문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My Fingerprints>는 이런 면에서 그녀에게 필연적인 작품일지 모르겠다.

신원 증명 외에 인간의 지문이 수행하는 또다른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과 맞닿는 일일 것이다. 손이라는 최고의 도구를 달고 태어난 인류는 세상의 물질과 소통하기 위해 자신의 열 손가락을 접촉하며 점차 세상에 익숙해져 가고, 그 과정에서 세상에 지문을 남긴다. 본작이 씬의 신예인 그녀의 데뷔작임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My Fingerprints>를 그녀가 전자음악 씬에 남기는 첫번째 지문이자 진입 선언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아가 손을 움직여야만 새로운 물질에 닿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첫 ‘접촉’이자 ‘닿음’인 <My Fingerprints>를 그녀의 첫 ‘움직임’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모든 움직임은 춤이라는 그녀의 정의를 고려해보면 본작을 하나의 춤이라 부르는 데에도 어색함이 없다. 결국 그녀는 씬에 첫 발을 내딛는 출사표로서 본인의 춤을 내세운 셈으로, 우리는 그녀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 춤”, 지독하면서도 포용적인 이 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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