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y in the junkyard. © DIY Magazine
작가주의적 송라이팅과 세계관을 구현하는 세 사람의 합주. 이 두 가지가 살아 숨 쉬는 앨범이 첫 정규작 <Role Model Hermit>이다. 에세이스트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를 펼쳐놓는 밴드는 많지만, 소설가처럼 우화적인 상상력으로 하나의 세계를 짓는 팀은 드물다. 앨범 대신 싱글을 소비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 앨범은 인간의 ‘변신’을 다룬다. 땅에 묻혀 거름이 된 아버지의 몸에서 작물이 피어나듯, 신체성을 띤 이야기들이 커다란 줄기를 이루며 트랙마다 알알이 박혀 있다. 등에 새로운 근육이 돋는 모습을 노래한 ‘New Muscles’, 나의 몸을 조각내어 받아먹는 두려움이라는 검은 개(‘Peter the Dog’), 코코넛처럼 단단하게 닫혔다가 어렵게 열리는 연인의 몸(‘Crash Landing’)이 이에 해당한다. 몸의 변형을 둘러싼 이야기는 후반부의 ‘Thou Shalt Sprout’에서 극적으로 고조되고, 마지막 곡 ‘Mouse’에서는 주머니 속에 살던 쥐가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화자를 알아보는 장면으로 닫힌다.
설화적 구성의 정점에 ‘Thou Shalt Sprout’이 있다. 가사는 이렇다. 임신한 아내와 딸을 둔 남자가 가족을 위해 시장에 나갔다가 별안간 살해당했다. 땅에 묻힌 남자의 신체는 시간이 흐른 뒤 거름이 되어, 그가 시장에서 사려고 했던 작물로 되살아난다. 심장은 붉은 채소인 비트가 되고, 머리는 레몬 나무로 뻗어 나가고, 팔은 올리브 가지가 된다. 머리카락마저 옥수수수염으로 변한 남자는 자신의 신체를 썩혀 맺은 작물로 죽은 뒤에도 가족을 먹여 살린다. 고전 설화라고 해도 믿을 이 이야기를, 인터뷰에 따르면 클라리 프리먼 테일러가 삼십 분 만에 썼다. 원시적인 북소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자연단음계에 기반한 민요풍 선율을 반복하고 변주하며 나아간다. 북유럽의 침엽수림을 헤치고 달려가는 마차 같은 웅장한 속도감 속에서, 5도 음정을 오가며 강렬하게 밀고 나가는 베이스 파트의 현악기가 담담한 보컬과 대조를 이루며 서사를 추진한다. 설화와 현악 편곡의 배합은 한 편의 영화 사운드트랙을 듣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고어체 제목을 사용해 곡의 설화적 성격을 부각한다. 기타 한 대의 은밀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직전 트랙 ‘Candelabra’와 대비를 이루며 앨범 구성상 가장 극적으로 맥동한다.
이처럼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상상력에 물리적인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세 사람의 합주다.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소리의 생명력은, 열네 살에 현악기 캠프에서 만난 프리먼 테일러(보컬, 기타)와 사야 바르바글리아(베이스, 비올라, 바이올린)가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온 현악 합주의 감각과 무관하지 않다. ‘Mantra III’에서 현을 그으며 분절된 채 울던 현악기는 ‘Crash Landing’의 엔딩에서 하모닉스로 가늘어지며 아스라이 사라진다. ‘Seek and Destroy’에서 경쾌하게 울리던 드럼이 ‘New Muscles’에서 가장자리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로 익살의 각을 세우더니, ‘Thou Shalt Sprout’에서 맨손으로 북면을 두드리는 원시성으로 돌아간다. 기타 한 대에 목소리만 얹은 미니멀한 ‘Candelabra’와, 제목처럼 말미에 그로울링으로 붕괴해 버리는 ‘Seek and Destroy’가 한 앨범에 공존한다. ‘Candelabra’는 프랑스 밴드 누벨 바그(Nouvelle Vague)가 보사노바로 다시 부른 ‘This Is Not a Love Song’의 분위기와 닮았다. 단조로 시작해 감화음을 오가며 보이는 불안정한 움직임은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방 안의 색이 달라지는 듯한 변화를 그린다. 촛대와 머리카락, 눈동자의 색깔, 서로를 응시하는 눈빛 같은 장면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그러다 코러스에 이르면 장조로 밝아지며, “당신이 곁에 있는 한 괜찮다”라는 대목과 함께 사랑의 안도감을 비춘다. 격랑이 이는 파도 위에 놓인 배와 같은 움직임을 구현해 내는 작법은, 앞선 트랙들과 달리 편지를 쓰는 듯한 단출한 편성이라 더욱 도드라진다.
© Rolling Stone UK
앨범 제목의 두 단어인 ‘롤 모델’과 ‘허밋’은 어딘가 상충하는 구석이 있다. 누군가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 그리고 은둔하여 창작하는 존재. 프리먼 테일러는 곡을 쓰고 녹음할 때는 허밋이 되고, 공연할 때는 롤 모델이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직접 진술하기보다 동물과 식물, 설화적 상징을 통해 우회하여 말하는 방식은, 본래 허밋에 가까운 자신이 롤 모델의 위치에 설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작가적 장치일 수 있다. 흔히 데뷔작에서 여러 스타일을 오가는 밴드에 대해 아직 자기 소리를 찾는 중이라는 평이 적용되지만 이 팀의 다채로움은 다르다. 하나의 주제를 곡마다 다른 형상으로 변주하면서도 분명한 공통의 색을 유지한다. 베이스와 비올라, 기타와 첼로, 하모니움, 드럼과 콩가, 비브라폰까지, 곡마다 사용하는 악기와 질감이 달라진다. 세 사람은 각자의 연주 언어를 바꾸어 가며 서로의 빈 곳을 채운다. 화려한 솔로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서로의 움직임을 읽으며 유기적으로 화답한다.
© Dazed
그러나 이처럼 치밀하게 결속된 앨범에도 몇몇 아쉬운 이음새는 남는다. 가장 두드러지는 트랙은 ‘New Muscles’다. 앨범을 관통하는 현악 중심의 밴드 사운드와 달리, 이 곡은 댄스 음악처럼 리듬을 부각한다. “내 뼛속에 용기가 있어”라며 근육을 용기의 은유로 삼고, 새로운 근육을 길러 다가오는 파도를 받아들이겠다는 발상을 가볍고 익살스러운 분위기로 풀어낸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 곡은 드러머 데이비드 애디슨의 헬스장 등록에서 영감받아 쓰였다. 본능을 강조하는 가사에 맞춰 멜로디와 화성을 덜어내고 리듬을 앞세운 작법은 곡 특유의 키치한 매력을 효과적으로 살린다.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몸을 얻는다는 점에서 앨범의 ‘변신’ 모티프를 다른 방향으로 변주한 시도도 흥미롭다. 다만 다른 곡들이 죽음과 신체 변형을 통해 축적한 어둡고 깊은 층위와 충분히 맞물리지 못해 앨범 안에서는 다소 부유하는 인상을 남긴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앞서 축적한 상징이 종결부에서 회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 곡 ‘Mouse’에서는 그간 부각되지 않았던 새로운 상징인 쥐가 등장한다. 앞선 ‘New Muscles’에서 등장했던 파도의 이미지를 이어받아 “파도가 보이시나요?”라고 묻던 화자는 이윽고 “나의 사랑스러운 작은 쥐, 저를 기억하시나요?”라고 되묻는다. 주머니 속에 있던 쥐가 다른 형상으로 돌아와, 화자에게 자신을 알아보겠냐고 묻는 구성이다. 달라진 몸으로도 서로를 알아보는 데서 비롯되는 온기 어린 마침표에는 동의하지만, 새로운 상징을 추가하기보다 앞선 상징들을 회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운드 면에서는 희미하게 일렁이는 기타와 드럼으로 역경의 시간을 그린다. 마지막에는 거품처럼 사라지는 피치카토와 함께 “아름다운 나의 쥐”라는 구절을 남긴다.
그럼에도 신화적인 세계관, 폭넓은 연주력, 상호 의존적인 합주를 고루 갖춘 신인의 등장은 반갑다. 일인칭의 직설적인 가사가 빠르게 유통되는 플랫폼의 시대에 설화적 세계관을 앨범 단위로 구축하는 일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영국의 소규모 공연장들이 존폐를 논하는 현실에서 밴드를 유지하는 일, 각자의 연주를 원격으로 녹음해 조립할 수 있는 시대에 십 대부터 합주력을 쌓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악기와 주법을 끊임없이 바꾸면서 서로의 빈자리를 메운 세 사람은 첫 정규작에서 한 편의 ‘변신 설화’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