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유는 참 영리한 아티스트다. 대중이 그에게 원하는 바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 사이 영점 조절을 뛰어나게 한다. 그 과정에서 도발적인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비판을 수용하고 울타리를 재건해 늘 보다 나은 다음을 도모했다. 그러나 30대에 접어들고 콘서트 규모는 스타디움까지 성장을 거듭해도 <The Winning>, <꽃갈피 셋> 등 신작엔 늘 미약하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성공적인 변신으로 20대의 문을 화려하게 닫았던 <LILAC>과는 다른 결과가 이어진 것.
30대 아이유의 오리지널 작품인 <The Winning>은 라이브 투어의 시작점으로 탄생했다. 전작과 비슷한 화려함을 추구했으나 그와 달리 음원 자체로 충분하기보다 ‘마이크 잡은 아이유를 기대하기’라는 미션에 머물렀다. 그러나 투어 마침표로 꺼내든 ‘바이, 썸머’는 달랐다. 간결하게 전달한 소회가 거창한 의도를 넘어선 것. 비 오는 무대 위, 전자 기타를 연주하며 깔끔한 음색을 쏟아낸 아이유의 모습이 커리어의 명장면으로 남았지 않나. ‘바이, 썸머’ 발매 후 1년, 새로운 공연을 앞두고 건강 악화로 취소된 활동을 달래고자 두 곡의 싱글 발매로 급선회한 결과가 ‘이 별로부터’다. 셈할 새도 없이 컨디션 저하를 또 다시 비켜 가다 보니 오히려 새 땅을 개척했다.
돌아왔고, 변했다. 서두에 언급했듯 대중의 니즈와 본인의 의사가 적절한 배합을 띤다. 특유의 서정적인 가사와 가창의 감정은 그대로 보존하지만, 이토록 신디사이저가 폭발하는 리듬 위에 목소리를 얹은 건 처음이다. 그나마 유사한 스타일의 신스팝인 ‘소격동’도 스산하지, 힘에 차 있진 않다. 노래와 연주가 알맞게 스포트라이트를 주고받으며 아이유의 새로운 얼굴에 좋은 인상을 남긴다. 5년 전 발군의 동시대 뮤지션 이찬혁, 피제이 조합 위 아이유의 독창적인 작사로 ‘어푸’라는 대어를 낚았다면, 이번에는 각 분야 스페셜리스트인 구름과 수민이 만든 하늘을 아이유가 날아오른다.
‘에필로그’, ‘Last Scene’, ‘이 별로부터’로 수민과는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여러 참여진이 융화를 이룬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가창의 측면에서 본 중 가장 이상적인 조화를 맺었다. 비트를 제공하는 측면이면 몰라도 멜로디 메이킹에 그가 참여하는 순간 가수가 웬만한 강세를 주지 않고서야 수민에 압도당하기 일쑤다. 레드벨벳 ‘봐(Look)’, 에스파 ‘Armageddon’처럼 개인의 고유성이 도드라지는 경우가 많고, ‘Last Scene’에서 아이유도 이미 한 번 휩쓸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균형을 잡고 수민의 아름다운 멜로디로 자신을 한껏 꾸미는 데 성공했다. 코러스의 여러 면면에서 수민이 등장하지만 ‘이 별로부터’를 다 듣고 기억에 남는 건 아이유의 목소리다.
구름이 만든 커다란 스케일의 음악은 그가 팝 록에 능통한 작곡가임을 다시 증명한다. 동시에 나날이 커지는 아이유의 무대에 어울리는 곡을 선사했다. 해외 팝스타들이 한 뼘 성장을 이룬 후 발표한 싱글들이 스친다. 그 음악들이 언어 차이 탓에 100% 와닿지 못했던 시간도 떠오른다. 전체가 한국어 가사로 이루어진 ‘이 별로부터’는 곡 안에 담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모국어로 해석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한 장점이다.
오랫동안 절친한 관계인 배우 유인나에게 바치는 곡 ‘Dear my crazy soulmate’도 감성과 확장의 중심에 있다. ‘Celebrity’처럼 K팝에 몸담은 해외 프로듀서진의 음악 위에서 가장 투박하고 보편적인 마음을 노래한다. 바로 우정이다. 남이면 찌뿌릴 법도 한 이상함을 기꺼이 받아들여주는 사이. 그 모두가 이해하는 애틋함으로 일상적인 장면을 들출 뿐인데 뭉클하기까지 하다. 이토록 풍부한 감정을 불러일으켜도 아쉬운 점은 있다. 핵심 메시지인 “같이 이상한 Gramma 둘이 되는 게 꿈이야” 에서 다소 어색한 한영혼용이 동반되는 점이 그렇다. 클리셰가 괜히 클리셰겠는가. 찌푸림을 찡그림으로 바꾸는 마성은 서사에 있다. 뮤직비디오 속 원로 배우 김영옥, 나문희의 우정 연기를 보다 보면 눈시울을 붉히며 잊어버리고 만다. 아이유는 역시 똑똑하다.
20대를 마친 아이유가 발표한 두 음반에 달린 아쉬움에 십분 동감한다. 전자는 무엇보다 투어를 염두에 둔 결과로 보였고, 조덕배나 양희은을 잎에 띄우던 ‘꽃갈피’는 롤러코스터, 부활처럼 비교적 최근에 밑줄을 그으며 레트로를 엇나갔다. 게다가 시리즈의 정서를 제대로 현상하기엔 최근 아이유는 너무나 말끔하고 선명하다. ‘삐삐’ 치던 2017-8년까진 아날로그를 구현할 수 있었더라도 스마트폰 메시지 화면을 띄운 ‘Blueming’ 이후부턴 디지털로 탈바꿈했으니까. <꽃갈피 셋>의 편곡을 도운 구름, 수민이 재해석이 아닌 창작에 임했을 때 결과값이 더 화려해진 걸 보면, 나이가 조금 더 든 아이유는 해몽보단 꿈을 주는 편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기대가 시들어갔을 이들에게 ‘바이, 썸머’와 이번 싱글로 하여금 가수 아이유에 주목해보자고 제안한다. 이 기세라면 30대 아이유의 첫 정규 앨범은 다를 것 같다.